1920년대 무장독립운동
- 최초 등록일
- 2014.12.30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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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920년대 국내무장독립운동
㉠ 보합단
㉡ 천마산대
㉢ 구월산대
2. 1920년대 국외무장독립운동
㉠ 삼둔자 전투
㉡ 봉오동 전투
㉢ 훈춘 사건
㉣ 청산리 전투
3. 독립군 부대의 시련
㉠ 경신참변
㉡ 자유시참변
4. 독립군의 통합
5. 민족 유일당 운동
본문내용
3․1 운동은 민족 운동가들에게도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비폭력의 평화적 방법으로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 맞서 민족의 해방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독립 운동의 노선과 방략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뜻 있는 민족 운동가들은 독립 전쟁 노선을 바탕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일제의 간섭과 탄압이 심하여 주로 만주 지역을 독립 전쟁의 근거지로 삼으면서 투쟁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초반 무렵 만주 지역에는 무장 투쟁을 목표로 70여 독립군 부대가 편성되어 있었다. 이들 독립군 부대는 국내에 자주 진입하여 관공서를 습격하고, 일본 군대나 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1920년대 국내무장독립운동
보합단
1920년 평안북도 의주, 선천, 철산, 용천 등지에서 활약한 항일 무장 독립 운동 단체다. 이 해 8월 김시황, 김동식, 백운기 등이 중심이 돼 조직했다. 창립 당시 단원은 500여 명에 이르렀고, 단장은 김시황, 총무는 김동식, 재무는 백운기, 선전은 김도원 등이 맡았다.
조선 각지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고, 암살대를 조직해 일본인 군인과 경찰, 친일 밀정, 민족 반역자를 처단하고 식민지 통치 기관을 습격하는 등 무장 투쟁을 집중적으로 벌였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김동식이 1920년 3월 만주에서 조선으로 돌아와 백운기 등과 대조선청년결사대를 조직했는데, 이 결사대가 확대된 것이 보합단이다.
화승총, 권총 등으로 무장한 보합단은 군사 훈련을 받고 평안북도 의주군 내 동암산을 근거지로 활약했다. 청년과 지식인들을 규합해 세력을 키우는 한편 군자금 모금, 친일 반역자 처단 활동에 주력했다. 이들은 활동 초기에만 약 2만 5,810원 가량의 군자금을 모금해 대부분 만주 독립군에 전달하고, 일부는 자체 무장을 위해 무기 구입에 사용했다.
그러나 동암산 근거지가 탄로나 선천군 산면으로 이동 중이던 1920년 10월 2일 산면 보곡사 뒷산에서 추적해온 일본 경찰대의 습격을 받아 교전을 벌였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8>, 국사편찬위원회, 2003
역시 연구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1,2급>, 지식통, 2013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