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과 국제정치
- 최초 등록일
- 2014.12.18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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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의 역사에 군으로 불리는 왕은 딱 두 명이 있다. 한명은 연산군이고 다른 한명은 광해군이다. 광해군은 조선 왕 중에서도 가장 평가가 갈리는 왕이다. 그 이유는 비록 그의 업적이 화려할지 모르지만 소위 말하는 폐륜 짓을 했기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광해군은 처음부터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첫째가 아닐뿐더러 첩의 아들로 선조에게 총애조차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자 우역곡절 끝에 세자로 정해진 것이다. 이때부터 광해군의 통솔력이 나타났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간 반면에 광해군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임진왜란을 막는데 공을 세워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백성들의 지지 때문에 아버지인 선조에게서 조차 권력에 대한 견제를 받게 되며 일종의 콤플렉스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후에 인목대비를 폐위 시키는 것과 영창대군을 사살하게 되는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폭군으로 알려지게 된다. 또한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인한 궁궐들을 다시 재건하는 사업을 벌이지만 과도하게 지어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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