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의 생애와 그의 시가 한국시에 미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14.12.16
- 최종 저작일
- 2014.12
- 4페이지/ MS 워드
- 가격 1,000원
소개글
김억의 생애와 그의 시가 한국시에 미친 영향을 소개한다
목차
1. 김억의 생애
2. 당대의 사회상과 그 속에서 김억의 업적, 그리고 그가 문학계에 끼친 영향
3. 아쉬운 점
본문내용
김억의 생애
안서(岸曙) 김억은 1895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고, 오산학교를 나와 일본 게이오 의숙 영문과에 입학했다. 1914년 도쿄의 조선유학생학우회가 발간하는 기관지《학지광》에 시 <이별> 등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부친의 급사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오산학교와 숭덕학교에서 교사로 역임하였고, 이때 김소월을 제자로 가르치기도 한다. 1918년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번역함과 함께 창작 시를 발표함으로써 창작활동을 본격화했다. 1920년《폐허》,《창조》동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외국시들을 번역한다. 특히 1921년 번역한 시들을 모아 펴낸 시집《오뇌의 무도》는 한국 최초의 단행본 시집으로 매우 유명하다. 1923년에는 자신의 창작 시들을 모아 한국 최초의 근대시집《해파리의 노래》를 펴낸다. 또 1930년에는 김포몽이라는 예명을 사용해 작사가로서도 활동했으며, 그 중에서도 선우일선의 <꽃을 잡고>는 대중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수많은 번역시와 민요시를 발표하여 문단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문학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참고 자료
권영진 「한국현대시해설」, 숭실대학교 출판부, 1993. 김욱동 「근대의 세 번역가」, 소명출판, 2010. 김용직(편집, 해설) 「해파리의 노래(외)」, 범우, 2004. 김진희, 「근대문학의 장과 시인의 선택」, 소명출판, 2009. 남상학 「[남상학의 시솔길] 안서 김억(金億)의 생애와 작품세계」, 남상학의 시솔길, 접속일자2014.12.03, http://www.poemlane.com/bbs/zboard.php?id=notice2&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0 위키백과 「김억」, 위키백과, 접속일자2014.12.03,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6%B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