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전투,독 소 불가침 조약의 배경,독‧소 전쟁의 발발,쿠르스크 전투의 전개,쿠르스크 전투의 결과와 특이점
- 최초 등록일
- 2014.12.15
- 최종 저작일
-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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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독‧소 불가침 조약의 배경
Ⅱ. 독‧소 전쟁의 발발
1. 동맹의 파기와 전쟁 원인
2. 스탈린의 인식과 전쟁 초기
Ⅲ. 쿠르스크 전투의 전개
1. 전개 과정
2. 당시 전투의 주요 인물들
Ⅳ. 쿠르스크 전투의 결과와 특이점
1. 전투의 결과
2. 특이점 - 서구의 원조와 소련 민중의 희생
Ⅴ. 결론
본문내용
쿠르스크 전투는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진행된 독일과 소련간의 동부전선에서 단기전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전투였다.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력이 대규모로 집결되어 지상과 공중에서 치열한 전투였으며 독일과 소련의 전투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그 결과로 인하여 이후의 2차 세계대전의 전세가 바뀌는 원인을 제공한 전투이기도 하다. 한 때 나폴레옹처럼 유럽을 제패하려고 했던 히틀러는 무너지고 스탈린은 승자로서 유럽에서 그 영향을 과시한다. 쿠르스크 전투의 근본적 원인이 된 독소전쟁의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고 쿠르스크 전투의 전개와 결과 등의 주목점을 파악함으로서 당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도록 하겠다.
Ⅰ. 독‧소 불가침 조약의 배경
1939년 독일은 체코를 점령하고 슬로바키아를 보호령으로 삼으면서 대규모의 팽창을 추진하였다. 당시 소련은 내부적으로 완전히 안정화된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국제 정세에서 과거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혁명 당시 백군을 지원하였고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차이가 있었기에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동쪽에서는 독일, 서쪽에서는 일본이 위협적인 세력으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소련에게는 위협적인 요소가 많은 시기였다.
그러나 1939년 4월부터 소련은 발트 해에서 지중해까지 모든 나라의 영토 보전을 보장하고 그 나라들 중 한 나라라도 독일의 공격을 받을 경우 세 열강이 모두 전쟁에 돌입한다는 동맹 관계를 영국과 프랑스에 제안하면서 회담이 진행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의 전반적인 평화적 분위기 유지를 주된 목표로 잡고 있었다. 소련은 정치 협정과 군사 협정의 동시체결을 주장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 협정까지 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즉 소련은 히틀러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을 원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를 저지할 외교 전선을 원했다. 더불어 회담의 과정에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경우 소련군이 폴란드 영토를 통과하여 지원하는 경우 동유럽 전체가 소련의 영향력으로 들어간다고 판단하여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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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M. 하우스 외 저, 윤시원 외 역, 2007,「독소 전쟁사1941~1945」,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