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 왕조별 내각제&환관의 발전
- 최초 등록일
- 2014.12.08
- 최종 저작일
-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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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명나라 왕조별 태조 부터
내각제 발달과 환관의 전횡 시기별로 왕조별 요약한것입니다
목차
1. 내각제도의 성립
2. 환관의 정치개입
3. 수보 장거정의 전권정치
본문내용
<내각제도의 성립>
· 태조는 승상을 폐지한 후에 직접 육부와 백사(百司)를 지휘하여 친히 독단하였지만 사실은 무척 처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비서처(秘書處)’를 두어 황제를 도와 정사를 처리.
· 명 중엽 이후로 각의 업무를 주재하는 내각대학사를 수보(首輔) 라고 불렀으며, 그 나머지에 차보(次輔)․군보(群輔) 라함.
<내각의 직책>
내각의 직책 : 황제에게 옳고 그름을 주청하는 고문(顧問)역할을 하고, 비답(批答)을 초안하는 것.
<내각제도의 발전>
1. 태조
·중서성폐지/ 사보관(四輔官) 설치 후 폐지/ 홍무 15년 전각대학사 설치 ⇒ 내각의 시초
* 전각대학사(殿閣大學士): 단순한 비서기구 일 뿐 정무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원관(原官)이 정 5품을 넘지 않도록 함, 상설기구가 아니라 일이 있을 때만 설치했음
2. 건문(建文)시대
·제태, 황자징, 방효유 등이 모두 한림출신으로서 대학사의 명칭은 없었지만 기무(機務)에 참여하여 기능적으로 후의 내각과 같은 역할을 함
3. 영락시대
·해진(解縉), 양영(楊榮), 양사기(楊士奇), 호광(胡廣) 등 7인을 문연각에 입직 ⇒ 기무 참여 ·영락 14년에 이들에게 전각대학사를 가수(加授)하기 시작 ⇒ 명실상부한 내각제도가 출현
·하지만 각신들의 지위는 정 5품을 넘지 않도록 함(권한 남용 방지 목적)⇒ 내각의 출현(영락 14년)
4. 내각의 지위 상승
영락시대 내각의 각신은 황자, 황손의 교육을 담당하고 황태자 보도(補導)를 위해 동궁(東宮)의 관을 겸함, 동궁관을 겸함으로써 내각의 지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됨.
5. 인종
· 동궁관이었던 이들의 지위는 크게 상승
· 양사기는 예부시랑(禮部侍郞), 양영 등은 태학사로 내각대학사를 겸하고 그 외의 각신들도 3품관에서 1품관까지 제수받게 되어, 영락시대까지의 5품관을 넘지 않도록 한 원칙은 깨져버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