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관찬사서를 통해 본 정치질서와 역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14.11.14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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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고대사편찬 - 『東國史略』
Ⅲ. 고려사편찬 - 『高麗史』『高麗史節要』
Ⅳ. 통사의 편찬 - 『東國通鑑』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 초기는 국가의 개국과 함께 여러 통치 체제의 기본을 세우는 매우 중요한 시기 였다. 국가 기틀을 닦기 위한 노력은 여러 부분에서 진행되었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이전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 또한 이루어 졌다. 그러한 역사를 편찬하는 주체가 군주와 관료였다. 그러나 군주와 신료는 상호 협력 관계이지만, 반드시 그들의 입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통해 노력했고, 역사 편찬도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술 체계나 역사 인식이 달라져 왔다. 군주, 신료 어느 쪽이 역사 편사의 주도권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서의 성격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존재 했다.
동국사략 고려사,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동국통감 등 현존하는 15세기 관찬 사서는 공동저술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참여한 사람들은 주로 고급관료이다. 따라서 당시 이들에 의해서 편찬된 사서가 집권층의 역사 인식이 많이 반영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 가능한 사실이다. 군주와 고급관료의 역사 인식은 지배체계 정당화와 지배이념 확립에 목표를 두고 관찬사서의 편찬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 초기 관찬사서의 연구는 비단 역사서술과 편사 체계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위치와 정치 일반과 관련시켜 이해 해야 한다. 정치 주도층에 따라 편사의 방향도 바뀌는 일도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15세기 관찬사서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많은 연구 성과가 있다. 그러나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대한 연구는 한영우, 변태섭, 정구복 교수 등의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으나, 동국통감에 대한 연구는 앞의 것에 비해 비교적 활발하지 못한 실정이다.
본 발표문에서는 조선 초, 즉 太祖에서 成宗에 이르는 기간 동안 편찬된 관찬 사서를 통해, 편찬 주체의 정치주도권에 따라 변화된 서술 체계와 역사 인식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고대사편찬 - 『東國史略』
『동국사략』은 太宗대의 고대사인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사서라고 볼 수 있다. 河崙, 權近, 李詹 등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三國史略』이라고도 한다.
참고 자료
사료
朝鮮王朝實錄
東國通鑑
高麗史節要
高麗史
한영우, 2002 『역사학의 역사』지식산업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6, 『국역동국통감』, 성문출판사
조동걸, 한영우, 박찬승, 1994,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上)』, 창작과 비평사
한영우, 1981, 『朝鮮前期史學史硏究』서울대학교 출판부,
변태섭, 1977 「고려사, 고려사절요의 사론」『사총 - 21권』역사학연구회
정구복, 「동국사략에 대한 사학사적 고찰」『역사학보』68권,
한영우, 1973, 「정도전 사상의 연구」『한국문화연구집서-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