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와 당의 교류
- 최초 등록일
- 2014.11.12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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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기 당과 발해의 대립 관계
2) 문왕의 즉위와 대당 관계의 개선
3) 당나라 문물 수용과 발해의 성장
본문내용
발해는 7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걸쳐 한반도 북부와 만주·연해주에 존속하며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발해와 동시기에 존재했던 중국의 왕조는 당이었다. 당은 남북조 시대의 다원적 세계질서를 부정하고 자기중심의 일원적 세계질서를 표방하며 이를 주변에 강요하였다. 그 과정에서 당의 압력과 회유, 주변국의 저항과 타협이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발해는 자주적이면서도 개방적이고 다양한 대외교류를 실시하였다.
1) 초기 당과 발해의 대립 관계
발해(인) 자신이 남긴 사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발해사 연구는 기본적으로 그와 교섭하던 당과 일본 측 기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당대 사료에 의하면 발해는 초기에 당과 대립하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당으로부터의 책봉을 받고 문물을 수용함으로써 해동성국이라는 융성기를 누렸다.
영주에서 거란의 대당 저항(696년 이진충의 난)과 같은 시기에 대조영이 유민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주, 천문령에서 당 군을 격파하고 이어 698년 동모산에 근거하여 진국을 건국하였다. 측천무후가 군대를 보내 대조영 무리를 토벌하려 했던 점을 보아, 건국 초기에 발해는 당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이에 대조영은 돌궐과 사신을 교류하면서 당에 대한 견제를 계속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