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
- 최초 등록일
- 2014.11.07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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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양과목 레포트로 쓴거구요 에이플받았습니다.
목차
1. 통일신라시대의 배경
2. 통일신라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
1) 천문학
2) 의학
3) 미술
4) 건축
5) 수학
본문내용
통일신라시대의 배경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먼저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고구려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 내었다. 그 후 당이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려하자 신라는 한반도 일부지역에서 당과 전쟁을 벌였다. 결국 신라는 당의 군대를 몰아내고 한반도 일부지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확립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신라가 당의 침략을 물리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지배 야욕을 저지함으로써 민족적 위기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한민족 형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그런데 삼국을 통일한 후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넓은 영토와 많은 국민을 지배하게 된 신라는 이에 상응하는 국가 기관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이었던 국학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설립되었던 것이다. 신라의 교육제도인 국학이 처음으로 성립한 것은 진덕여왕시절이며, 국학이라는 명칭으로 정식 교육제도로 발족한 것은 삼국사기의 기사 그대로 신문왕 2년(682)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국학은 몇명의 박사와 조교, 2명씩이 대사와 사로 이루어졌으며 당의 국자감삼부과제를 모방하였고, 다른점은 국학은 2개의 학관에서 유교경전과 기술교육을 병합적으로 실시하였고 의학, 천문학 등은 국학의 기술교육과는 별도로 이루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
1)천문학
누각박사와 천문박사를 임명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이들 교수직 밑에 류각생, 천문생을 두는 천문제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 교재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산경심서 중의 하나이며 동양천문학자들의 필독서인 ‘주비산경’이 당연히 기본교재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1) 물시계
고구려나 백제가 시계를 가졌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정밀한 일식관측기록으로 미루어 누각 제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누각 제도를 둔 것은 통일신라 이후로 중앙 관청의 근무교대나 왕실에서 행하는 여러 제사 행사 때의 시각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음이 분명하다. 누각이 천문과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처음 제도가 생긴 후로 31년이 지난 경덕왕 때의 일이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몸, 질병, 권력:통일전쟁기 신라의 군진의학-이현숙,p36
http://soeast.com.ne.kr/art15-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