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 vs 유방
- 최초 등록일
- 2014.10.19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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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항우(項羽, BC 233- BC 202)
2. 유방(劉邦, BC 247- BC 195)
3. 리더십의 차이
본문내용
진(秦)나라 말기 하상(지금의 강소성 숙천 서남)출신으로, 이름은 적(籍), 자는 우(羽)이다. 초나라 귀족 집안 출신으로 비록 초나라 권역이 아닌 강소성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나 초나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부 향연과 반진(秦) 운동을 펼친 숙부 향량의 가르침하에 철저한 초나라 사람으로 성장했다. 외견상으로는 키가 8척이 넘고 세발달린 걸솥을 한번에 드는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항우는 분명 대단한 야심가였으며 정이 많고 질투심,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힘은 산을 뽑아낼 정도로 세고, 용기는 이 세상을 덮고도 남는다는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 유방, 그러나 유방은 항우보다 모든 조건에서 열세였다. 더군다나 항우는 스스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할 만큼 무예도 출중했다. 게다가 양귀비와 함께 중국 역사상 대표적 미인으로 회자되는 우미인과 관우의 적토마에 견줄만한 천하의 명마 오추마를 거느렸으니 스타급 군주로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일대일 싸움에선 항우를 당해낼 장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성질이 포악하여 민심을 얻는데는 실패하였다. 신안에서 투항한 진나라 백성 20만을 무참히 땅속에 파묻는가 하면, 진나라 궁전을 불태워 버리고 시황제의 무덤을 파 헤쳐 재물을 강탈했으며 항복한 진 황제의 아들 자영을 죽였다. 또한 논공행상에서도 공정하지 못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