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혁명과정과 중요인물 및 사건에 대한 정리
- 최초 등록일
- 2014.10.16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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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진독수
진독수 안휘성 회녕현의 지주의 집에서 출생하였다. 조부의 훈육을 받아 과거를 거쳐 사관의 길을 희망하였으나, 중간에 유학을 지망하여 일본에 건너갔다. 1911년의 신해혁명에서 활약하여 안휘성 교육사장이 되었으나, 제2혁명에 패배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정치를 떠나 언론에 뜻을 두어 1915년 7월에 잡지 〈신청년(新靑年)〉을 창간하였다. 이어 베이징 대학의 문과학장이 되어 신문화운동을 추진하였다.
5.4 운동 중에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었다, 1920년부터는 레닌주의자로 공산당 창당 발기 준비에 나섰고, 1921년 7월 코민테른의 지도하에 중국공산당 제1차전국대표대회를 개최, 이대소와 함께 공산주의 정당을 창당하였다. 중국공산당의 총서기가 되어 중국의 레닌이라고도 호칭되었다.
신청년
1915년 9월에 창간된 국민계몽지이다. ‘자주적이되 비노예적이며, 진보적이되 비퇴영적이며, 진취적이되 비은일적이며, 세계적이되 비쇄국적이며, 실리적이되 비허명적이며, 과학적이되 비상상적이다’ 등 6가지 대의를 표방한 반봉건·반고전 문학의 바탕 위에서 민주혁명을 고취한 잡지이다.《신청년》 1915년 9월호부터 1917년 8월호까지의 게재 내용은 공자(孔子) 비판· 서양사조· 청년개조의 순서이지만, 1918년 1월부터 1926년 7월에 출간했던 특집기사를 다시 내용적으로 분석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공산주의·러시아연구가 31%, 서양 사조 14.8%, 서양 문학 14.2%, 문학혁명 11%, 공자비판 8.6%, 민주정치 6%, 청년개조 4.9%, 과학 4.6%였다. 초기에는 자기비판을 선행하고 외래사상을 도입했지만, 창간 3년 뒤부터는 러시아의 사회주의·공산주의·노동문제·무정부주의 등에 보다 치중하였다.
호적
1 중국 상하이 출생이다. 19세 때 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