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의 개념
- 최초 등록일
- 2014.10.08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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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아파트
2. 달동네
3. 벌집
4. 광주대단지 사건
5. 현재까지(타워팰리스)
본문내용
국내의 아파트 건축물의 시대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1956년에 한미재단 아파트가 2층 규모로 보강콘크리트 블록조를 사용하여 건축되었다. 1957년에 중앙산업의 종암 아파트(4층)가 보강콘크리트 블록조로 건축되었으며, 중앙산업은 1958년에 한남동 외인촌과 서대문 (개명 아파트)에 아파트를 또한 건립하였다.
최초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1962년에 주택공사에 의해 마포에 세워졌다. (마포 아파트:구조 함성권). 1960년대 중반 이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에 의해 많은 시민아파트가 건설(R.C 골조 시스템)되었으나, 아파트 부실화 및 slum화의 시초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여의도와 반포, 강남, 영동일대에 벽식 아파트 구조가 대량으로 지어졌으며, 1980년대에 개포동, 가락동, 목동신시가지, 잠실, 상계동, 중계동 등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이 시대 주택의 특징은 거실 중심의 개방적 구성과 침실간의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한 폐쇄적 구성이 혼재하는 공간의 기능적 분화라고 할 수 있다.
<중 략>
무허가 건물에 대한 대규모 철거가 시작된 것은 1966년 4월 ‘불도저’ 김현옥 시장이 부임하면서다. 1966년 당시 서울에는 13만6650동의 무허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는 이 숫자를 근거로 4만6650여 동은 ‘양성화’라는 이름으로 현지 개량하고, 나머지 9만 동은 시민아파트를 만들어 이주시키거나, 경기도 광주군에 대단지를 조성해 이주·정착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울시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 철거민 10만5천 가구 50만~60만 명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대단지 사업지구(계획 면적 350만 평)에 옮기는 대규모 이주·정착 사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광주 대단지’ 사업의 시작이었다. “광주에 가면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 수 있고,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말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2년이 못 돼 인구가 15만 명으로 늘어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