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가장 유능한 외교관, 서희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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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고려 초기 거란과의 관계
3. 거란의 고려 침입과 서희의 활약
4.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916년 나라를 세운 뒤 938년 ‘요(遼)’로 이름을 바꾼 거란은 당시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중원 전체를 장악할 야망을 가지고 있었던 거란은 960년 건국된 송을 압박하며 고려를 위협했다. 송과 거란의 대치상태에서 고려는 송과 국교를 맺고 거란을 멀리했다. 발해에 대해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펴던 고려의 왕건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한 거란의 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구려를 이은 고려는 후삼국이 각축을 다투는 와중에서도 북방순략을 게을리 하지 않는 등 북방 변계의 변화와 개척에 진력하는 정책을 펴 나갔다. 이는 자연스레 거란을 배척함으로 이어졌으며, 고려에 대한 거란의 태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바로 태조(왕건)이 거란이 보내온 낙타들을 굶겨 죽인 일이었다.
고려의 이러한 태도는 끝내 거란과의 전쟁을 불러왔으며, 993년에 거란의 소손녕(簫遜寧)은 80만의 군사를 이끌고 서북면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고려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서희(徐熙)는 이에 반대하고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였다.
<중 략>
3. 거란의 고려 침입과 서희의 활약
거란은 942년(태조 25)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교빙을 청했으나, 태조는 이를 거절했고, 나아가 훈요10조(訓要十條)에서도 거란을 금수(禽獸)의 나라로 단정하여 경계하도록 했다. 이러한 국제정세에 큰 위협을 느낀 거란은 배후의 강적인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국내정치가 안정되는 성종대(聖宗代)에 이르러 986년에 먼저 압록강 중류지역의 정안국을 쳐서 멸망시키고, 991년에는 압록강 하류의 여진족을 경략한 후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