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과연 폭군인가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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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 리 말
Ⅱ 연산군은 누구인가?
Ⅲ 연산군의 생애
Ⅳ 연산군은 과연 폭군인가?
1) 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
2) 폐비윤씨
3) 여진과의 정책
Ⅴ 맺 음 말
본문내용
머리말
연산군은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하여 토로하는 것을 즐기는 왕이었으며,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생각이 자유롭고 감각적인 왕이었다.
그런 그가 폭군의 이미지 속에 갇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쉬웠고, 연산군을 재평가하고 싶었다.
더 이상 폭정을 일삼던 군주의 모습이 아닌 폭군 이미지 속에 숨겨진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함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모습까지도 보여주고 싶어 연산군을 리포트 주제로 정하였다
연산군은 누구인가?
1.
휘 융(). 성종의 맏아들. 즉위 3년 동안은 별탈 없이 보냈으나, 1498년 훈구파(勳舊派) 이극돈(李克墩) ·유자광(柳子光) 등의 계략에 빠져, 사초(史草)를 문제삼아 김종직(金宗直) 등 많은 신진 사류(士類)를 죽이는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키게 하였다. 1504년에는 생모인 폐비 윤씨가 성종의 후궁인 정씨(鄭氏) ·엄씨(嚴氏)의 모함으로 내쫓겨 사사(賜死)되었다고 해서 자기 손으로 두 후궁을 죽여 산야에 버리는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조모 인수대비(仁粹大妃)를 구타하여 죽게 하고, 윤씨의 폐비에 찬성하였다 하여 윤필상(尹弼商) ·김굉필(金宏弼) 등 수십 명을 살해하고, 이미 죽은 한명회(韓明澮) 등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였다[甲子士禍]. 또 그의 난행을 비방한 투서가 언문으로 쓰여지자, 한글 교습을 중단시키고 언문구결(諺文口訣)을 모조리 거두어 불태웠다.
참고 자료
香奩과虛無의詩學 -燕山君의문학적思惟를중심으로- 裵 奎 範(慶熙大 學ミ術硏 究敎授)
조선 燕山君代(연산군대) 여진의 동향과 대책 -김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