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원인 관련 독창적 리포트(비기독교화 현상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4.09.13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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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사상에서의 비기독교화
2. 혁명 이전의 생활에서의 비기독교화
3. 프랑스 혁명기 비기독교화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프랑스 혁명은 근대 이전의 세계와의 단절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군주제라는 정치 시스템과 봉건제라는 경제 시스템, 신분제라는 사회 시스템과의 단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은 이전 시대의 세계관이 전혀 새로운 세계관으로 대체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세계관은 구시대를 대표하는 산물인 종교를 처단하였다.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 기독교는 유럽 인민의 정신세계를 장악한 종교였으며, 나아가 유럽의 세계관의 일부로서 자리 잡았다. 중세 카톨릭 교회는 유럽의 정신세계는 물론 세속의 권력까지 장악하였고, 종교 개혁 이후로도 기독교는 일정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이를 모조리 부정하였다.
<중 략>
이성의 축제로 대표되는 비기독교화는 지방적 기원을 가진다. 이것은 세속화 과정에서 생겨난 프랑스인들이 가진 감성의 산물이며, 이는 프랑스 대부분의 지역에서 환영을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한 분석이다. 이런 유형의 기독교화는 종종 무신론적이기도 하였다. 반면 최고존재숭배제전은 앞서 밝혔듯이 유신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파리 중앙 정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제전은 또한 파리 분지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았으며, 프랑스 전역에서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이성의 축제와는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사례는 물론 최고존재숭배제전이 정치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한 호의 여부를 보여주는 지표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유신론보다 무신론을 지향하던 당시 프랑스 인민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 인민이 무신론을 지향했다는 사실은 로베스피에르의 처형 이후로 최고존재의 숭배 또한 끝났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최고존재의 숭배는 프랑스의 인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참고 자료
Daniel Mornet,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 민음사, 1995
Roger Chartier,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기원』, 일월서각, 1998
정동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독서환경의 변화, 독서문화연구, 2010
한명숙, 프랑스 혁명의 종교적 요인, 경희사학,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