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통공(辛亥通共)과 번암(樊巖) 채제공의 경제사상
- 최초 등록일
- 2014.09.12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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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정조 시대 개혁의 총사령관
2. 조선 최초의 시장 자유화 조치, 신해통공(辛亥通共)
3. 경제 신도시, 화성 건설 총지휘
4. 채제공의 경제사상 하나, 시장과 상업의 자유 옹호
5. 채제공의 경제사상 둘, 반독점론
본문내용
1. 정조 시대 개혁의 총사령관
조선사의 전반부를 대표하는 성군이자 개혁 군주라고 하면 누구나 ‘세종 대왕’을 쉽게 떠올린다. 또 후반부를 대표하는 성군이자 개혁 군주로는 ‘정조 대왕’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세종 시대와 정조 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세종 시대 = 황희’, ‘정조 시대 = ?’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 정조 시대의 물음표를 채워 주는 인물이 바로 번암 체재공이다.
정조는 즉위 12년이 되는 1788년에 전격적으로 채제공을 우의정에 임명한다. 그의 발탁을 전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이전 80여 년 동안 노론 출신이 아닌 인물이 정승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 략>
처음 통공 정책이 실시되었을 때 이에 크게 반발한 시전 상인들이 입궐하는 채제공의 행렬을 가로막고 “통공 정책을 폐지하라!”고 시위를 한 적이 있다. 이때 체재공은 시전 상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도성 안에서 사는 사람과 도성 주변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똑같이 나라의 백성이다. 행상이든 점포를 갖고 있는 상인이든, 또 물품이 많든 적든 장사를 하는 행위는 모두 떳떳하다. 그런데 시전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자기 물건을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을 단속하고 내쫓아 도성 안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드는 일은 참으로 사람으로 할 도리가 아니다. 이 사람도 백성이고 저 사람도 백성인데, 어찌 차별을 둘 수 있겠는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