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사] - 한복 개량운동및 양장의 도입과 유행
- 최초 등록일
- 2014.09.02
- 최종 저작일
-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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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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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복 개량운동
2. 양장의 도입과 유행
3. 양복의 도입과 유행
4. 식민지 시대 (몸뻬와 국민복)
5. 해방이후 (맘보바지, 마카오 신사)
6. 1970년대 미니스커트, 청바지
7. 1980년대 유니섹스 스포츠 웨어
8. 2000년대 란제리룩, 힙합, 배꼽 티, 밀리터리룩
9. 유행이란
본문내용
1. 한복 개량운동
1910년대 한복을 즐겨 입자는 주장이 나와 한복 개량운동이 일어납니다.
남성들이 ‘개량한복’은 의복제도의 개혁에 의한 관복의 변천과 양복을 선택한 것과 달리, 도시인과 해외 유학생 즉, ‘신여성’들은 거의 개량 한복을 입었습니다.
초기에 검청 통치마에 흰저고리 스타일에서 차츰 짧아져 ‘깡동치마’라고도 불림.
가슴위 까지 올라오던 저고리는 허리까지 내려오고, 고름대신 단추를 달았습니다.
치마도 굻은 통주름을 잡아 서양의 플리츠스커트와 비슷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2. 양장의 도입과 유행
1920년대 들어서면서 차츰 양장하는 여성이 늘어납니다. 양재법 관련 기사가 신문이나 잡지를 차지하고, 유행하는 양복의 경향, 해외유행 소식등의 비중이 커집니다. 1930년대 이르면 ‘양장 전성시대’를 맞이하면서 양장 입는여성이 늘어납니다.
3. 양복의 도입과 유행
1920년대 경성과 대도시에서 일본인이 양복을 입고 돌아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었을 뿐 아니라, 조선인 관리와 상인들도 곧잘 입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유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양복이 크게 번집니다. 양복 수요가 점차 늘자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대도시에 양복 기술자
양성기관인 양복 실습소가 생깁니다. 조선 엘리트들은 두루마기 대신 스프링코트와 오버코트를 입었으며 셔츠 넥타이 모자 구두 지팡이 등의 장신구를 갖추었습니다.
4. 식민지 시대 (몸뻬와 국민복)
몸뻬 : 본디 몸뻬는 에도시대 일본 동북 지방 농촌에서 일할 때 입었던 옷입니다. 일제는 전시체제가 되면서 간단복과 몸뻬를 권장합니다. 몸뻬는 일본의 노동복이었습니다.
국민복 : 학생들의 제복을 통제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국민복과 근로복을 입도록 한다. 국민복은 일본에 앞서 식민지 조선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국민복은 관공서 직원과 남성 교원이 먼저 입기 시작하여 청년 훈련소생, 청년단의 남자단원, 중등학교 남학생들에게 확대된다. 일반 시민들에게도 국민복을 권장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