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7,8세기 안동지방 유림의 정치사회적 기능
- 최초 등록일
- 2003.06.22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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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원 리포트 입니다.
자료에 충실해서 적은 겁니다..
한달간의 준비과정을 거친것 같군요
많은 도움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머리말
2. 조선후기 붕당정치와 안동유림
3. 안동유림과 영남유소
4. 안동유림과 향전
5. 맺음말
본문내용
안동지방은 조선시대 경상도내 4개 계수관의 하나로서 강력한 사족과 이족을 확보한 채 영남에 있어서 지방행정·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중기부터는 기호지방에 대칭되는 영남학파의 본산으로서 도내의 유림을 영도하여 서인 내지 노론정권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야당인 남인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활발한 정치·사회적 활동을 수행해 왔다. 한편 이곳은 지방사 연구에 필요한 문헌자료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 열읍의 읍지 가운데 사료적 가치가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영가지』를 비롯하여 읍지·면지(와룡지)·동지(김계지)와 향규·향안·동약, 고문서와 일기류 및 문집 등이 현재에도 도처에서 전래되고 있다.
이렇듯 유별난 안동지방은 또 다른 지역에 비하여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전통사회 군현제의 한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는‘임내’와 ‘월경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동성촌과 서원·사묘 및 유생 수가 전국 군현에 대비하여 볼 때 가장 많다. 또한 토착세력인 토성과 거기에서 분화된 사족과 이족이 공히 강성하여 상경관인과 재지세력이 서로 동본·동조의식을 갖고 상호 긴밀한 관계에 있었는가 하면, 토성사족과 이주사족으로 구성된 재지사족과 토성이족은 각기 유향소와‘부사’·‘현사’를 근거로 향안과 단안을 작성 비치하고 서로 협조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향교와 서원이 재지사족의 장악하에 공동보조를 취해 나간 것도 이 고장의 한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안동유림은 조선후기 집권층의 갖은 압제와 관권의 위협을 무릅쓰고 남인의 입장을 고수하여‘천금쟁쟁, 하유청청’이란 칭송을 들었는가 하면 그들의‘세론’(남론세수)에서 이탈한 자를‘배부반조’의 무리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때로는 수천 명·만여 명의 유생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집권층과 정면대결했는가 하면 때로는‘병호시비’와 같은 자체 분열을 일으켜 심각한 향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영남학파의 형성과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