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오늘날의 효행
- 최초 등록일
- 2003.06.2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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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예전의 효행 사례
⊙효자 강만채, 강만구 형제
신암면 용궁리에는 강만채, 강만구의 효자문이 있다. 강씨 두 형제는 병석에 누우신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하였으며 몸에 종기가 나면 고름을 입으로 빨아서 짜 주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님의 변을 맛보아 약을 조제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지극한 효성을 들은 유생들의 상소로 조정에서 효자문을 내려 그의 효심을 기리며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효자 자암 김구
자암은 김구 선생의 호이다. 그는 선종 19년에 출생하여 중종2(1507)년에 생원과 진사 두 가지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고상하고 행동이 독실했으며 힘써 학문을 연구하여 중종14년 홍문관 부제학에 재수되고 조광조와 더불어 왕도 정치의 쇄신을 꾀하여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었으며 남해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가 15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고 고향인 예산에 돌아오니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 그는 원통한 마음에 부모의 산소에 가서 통곡을 하며 산소에 머물렀다. 이 때 그가 뿌린 눈물 때문에 산소 근처의 잔디풀이 모두 말라 죽었다고 한다. 그도 이로 인하여 병을 얻어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그의 글씨체는 예술의 경지에 올랐었으며 또한 문장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신암면 종경리에는 자암선생 신도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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