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에 대한 논쟁
- 최초 등록일
- 2003.06.20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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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폐모살제의 패륜아
3. 현실적인 실리외교의 선구자
4. 광해군에 대한 나의 입장
5. 맺음말
본문내용
<폐모살제〉의 패륜아로 낙인 찍힌 연약한 국왕인가, 현실적인 실리외교를 펼친 선구자 인가. 이것은 선조의 둘째 아들로 왕위를 이은 광해군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이다. 그나마 1970년대를 기점으로 광해군을 다시 보는 시각이 형성되어 시작된 논쟁이다. 이전에는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명을 배반한’패덕하고 연약한 군주로만 묘사되어 왔다. 이번 과제를 계기로 여러 자료들을 살펴 봄으로써 광해군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 해 보고자 한다.
2. 폐모살제의 패륜아
광해군은 연산군과 더불어 타의에 의해 왕위에서 쫒겨나 묘호가 대왕이 아니라 군(君)으로 강등 된 불운한 왕중 한명이다. 이처럼 광해군을 쫒아낸 쿠테타 세력들은 그 명분을 '폐모살제’‘과도한 토목공사를 벌여 민생을 피폐하게 한 것’‘명의 은혜를 배반한 것’등을 제시 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인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인목대비를 덕수궁에 유폐하고, 9살의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증살(蒸殺)시켜 죽인 것은 광해군을 악덕군주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