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직과 한국성결교회
- 최초 등록일
- 2014.07.03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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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명직과 한국성결교회
2. 이명직이 말하는 한국성결교회 정체성과 자신의 견해
본문내용
이명직과 한국성결교회
실제로 이명직 목사는 한편으로는 교단을 이끌어가는 현실 교단 정치가로서의 모습을 갖고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결을 강조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로서의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1921년 성서학원의 부흥운동의 핵심은 회개의 역사이다. 이는 1907년 대부흥운동에서 나타난 역사이다. 성령의 역사로 내면에 감추었던 죄악이 드러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놓고 자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서학원은 죄악을 회개하는 몸부림으로 가득하였다.
이명직 목사가 성결교회 및 한국교회에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교단 정치가나 신학자로서가 아니라 성경을 읽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영감을 전하는 데에 있었다. “주와 동행기”를 시작하면서 마태복음이 묵상을 함께 나누었다. 그의 마태복음 묵상의 초점은 성결이었다. 그는 마태복음을 통해서 성경을 재발견하였고, 이것을 한국 성결교인들과 한국교회에 전하였다. 성결교회는 신유를 강조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결교회가 의학을 무시하고 맹신적으로 나간다고 비판하였다. 물론 이명직 목사는 신유를 믿었다. 하지만 그는 의학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명직 목사의 생활을 살펴보면, 부흥집회 인도가 그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그 자신이 부흥사라는 것을, 또 성결교회가 이런 부흥 운동에 앞장서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는 성결교회의 지도자였지만 그가 독선적인 교파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성결교회 헌법을 강해하면서 교파주의를 배격하였다. 이명직 목사의 리더십은 그가 교단 최고의 행정책임자였다는 데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성결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개교회를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이러한 집회를 통해서 성결교회의 정신이 강조되고 정체성이 확립되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 성결교회 신자는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그곳에 사명을 주시어 파송하신 줄 믿고, 활동하여 교회가 설립되기를 바란다.”고 기록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