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에 대한 나의 생각
- 최초 등록일
- 2014.07.02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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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이팅게일에 대한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이력서 존경하는 사람란에 쓸 경우 참고하라고 올립니다 ^^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이팅게일. 간호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위인으로 1854년 크림전쟁에서 간호를 하며 부상병들에게 헌신과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약 200년 이상동안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나이팅게일은 200년 이상동안 모두에게 각광받고 있는 것 일까? 나이팅게일 이후의 간호사 혹은 선교사 그리고 의사 중에서는 환자에게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의사인 슈바이쳐가 있으며 닥터 노먼 베쑨이 있고 또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있으며 최근에는 이태석 신부님 있었다. 나이팅게일이 그렇게나 각광을 받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려면 우선 나이팅게일의 성향 그리고 자라온 환경 등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1820년 5월 영국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 교육과 여행을 다니며 자란다. 성품이 착한 나이팅게일은 소녀시절부터 병든 동물이나 동네의 가난한 환자를 돌봐주었다고 한다. 항상 삶의 의미를 생각하곤 했던 그녀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소명이 바로 열악한 상황이던 간호에 헌신해 보람 있는 생애를 사는 것임을 발견한다. 그러나 당시 여성들은 남성의 부속물처럼 취급받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받지 못하던 사회였다. 중류계급이상에서는 아들뿐만 아니라 딸도 교육을 시켰으나 이것은 교양을 위한 교육이지 여성이 따로 직업을 갖는 것을 매우 천박하게 여겼다. 게다가 그 중에서도 간호는 ‘낮고 비천한 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어 부모의 반대는 당연한 것이었다. 결국 나이팅게일은 갈등과 좌절,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우선 공중보건에 관한 의회보고서 등을 연구하고 작성하는 연구원을 하며 자신의 사회 참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부모님을 설득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님을 설득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10년 동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신념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대단한 인내심과 집중력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서른한 살이 되던 때에 독일의 카이져스베르트에 위치한 신교 여집사 간호단체에서 정식으로 간호사 교육을 받은 후 영국으로 돌아가 ‘귀족 여성들을 위한 병원’에서 일을 했다.
참고 자료
나이팅게일의 간호론- 나이팅게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박중서
과학동화 2011년 2월호 - 김종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