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서평
- 최초 등록일
- 2014.07.01
- 최종 저작일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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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 참고하세요~
목차
1. <들어가며>
2. <내용 요약>
3. <징비록이 가지는 의의>
본문내용
이 책은 조선 明宗에서 宣祖에 이르기까지의 명재상인 柳成龍이 宣祖25년에 일어난 임진 왜란,정유재란에서 보고, 겪은 것을 바탕으로 전쟁이 끝날 무렵인 宣祖 32년에 관직에서 물러나서 고향인 풍산 하회로 돌아와 전쟁중에 겪었던 成敗의 자취를 곰곰이 반성, 고찰하여 회고록인 懲毖錄을 편찬한 것으로서 현재는 국보132호에 지정되어있다.
그의 간단한 약력을 소개하자면 호는 西厓, 본관은 ?山으로 明宗 21년 문과에 급제하여 承文院 權知副正字에 보직되었으며, 선조3년에 弘文館 副修撰이 되었으며 당시의 제일가는 講官으로 인정되었다. 선조23년 우의정에 승진되고 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훈3등에 서록되어 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24년에는 좌의정에 승진되었고 왜란이 발발하자 播遷 과정중 개성에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이내 파면되고 다시 府院君으로 敍用, 이후 그는 난이 끝날 때까지(1598) 四道 都體察使, 三南都體察使로서 외교·군무·민정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본래 징비록이란 서명은 그의 자서 시경에서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뒤에 근심이 있을까 삼가노라’ 고 한 문구에서 인용 한 것인데, 임진란 중의 일을 회고 반성하여 뒷날에는 이런 낭패스런 일이 없도록 미리 조심하자는데 의의를 두고 집필하였다.
柳成龍은 그의 자서에서 “나같이 불초한 사람이 나라가 어지러운 때에 중한 책임을 맡아서 위태로운 시국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데도 오히려 전원에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 어찌 임금의 관대한 恩典이 아니겠는가? -중략- 이로써 내가 전원에 있으면서도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뜻을 표시하기로 하고, 또한 어리석은 내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나타내고자 한다.” 는 동기를 표방하며 정국의 최고 책임자로서 전쟁 처리의 잘못을 통감하고 국가에 사죄하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