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1. 한미 양국의 노근리 사건조사 실시
2.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진상조사 결과
Ⅲ. 노근리 진상조사 그 이후
1. 노근리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
2. 미국내의 기밀문서, 참전 미군의 증언 등장
Ⅳ. 북한이 본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Ⅴ. 나가는 말
Ⅵ. 참고자료
본문내용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 까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일어난 양민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군 제 1 기갑연대가 약 500~600여명의 피난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60여년이 흐른 현재, 노근리 사건은 미군에 의한 우발적인 사건이다 라는 주장과,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라는 두가지 측면의 주장으로만 나타난 채, 피해자 및 유족에게 이 사건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주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국 정부는 노근리 대책위원단에게 반미주의 집단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입장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노근리 사건이 미군에 의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우발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전쟁 범죄적인 측면인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중 략>
노근리 사건에 대해 북한의 일부 종군기자들도 언급한 문건이 발견되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대구에서 평양으로 가던 민병균, 상주와 대구에서 파견되어 있던 박웅걸, 평양에서 파견된 전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들은 노근리 사건현장에 발생하여 터널로 참상을 보러 가 당시 사건을 언급했다.
이들은 미군이 직접적으로 피난민을 사살했다고 밝히며 당시 사건의 생존자들이 미군을 물리쳐 줄 것을 건의하였다고 언급하였다.
한편, 북한이 언급한 문건에 대해 노근리가 아닌 다른 지역은 아닌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위 자료의 정찰보고건에서 30일 10시에 인민군 도로정찰대가 황간 시가지 내부에 있었다는 점, 내동과 노천리 양쪽 고지와 장성리지점에 미군이 있다는 점이 언급된 것과 인민군 2사단 소속 정찰중대 문화부 책임자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결과로 인민군도 노근리 사건이 미군이 의도적으로 노근리 사건을 일으켰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인민군은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도로까지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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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평화공원 – www.nogunri.net
대한민국 국회 – www.assembly.go.kr
영화 “ 작은연못 ”
MBC 다큐멘터리 “ 노근리는 살아있다. ” - 2009년 제작, 2010년 6월 25일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