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세미나 - 홍대용의 의산문답 발표자료
- 최초 등록일
- 2014.06.24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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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저자의 문제의식
2. 접근방법과 결론
3. 한계와 비판
4. 저자와의 대화
5. 소감
6.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시사점
7. 자신의 전공과 관련성
본문내용
『의산문답』의 저자 홍대용의 문제의식은 성리학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홍대용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성리학의 한계가 들어났는데 첫 번째로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명나라의 멸망과 오랑캐가 되는 청나라의 중국지배다. 성리학에 기반을 두고 사대해 왔던 명나라가 붕괴되자 조선에서는 오랑캐라 여기던 청나라를 섬길 수 없다며 무시와 멸시를 한다. 저자는 이것 자체에 문제의식을 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청으로부터 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것에 있다. 당시 저자가 외교관을 따라 청으로 갔던 것은 조선이 청과의 외교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청을 오랑캐라 생각하여 조선보다 못한 나라라 생각하여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신진문물을 접할 기회를 갖고자 했던 것이다.
<중 략>
홍대용씨와는 거의 300년의 후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홍대용씨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 당시 주류 양반이었던 노론의 한 사람으로 입신양명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이라는 학문보다는 현실에 직시한 학문인 실학에 그 뜻을 두었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제가 만약 당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과연 주류에 속해 있으면서 비주류의 길을 갈 용기가 있었을까. 지금 저는 홍대용씨가 공부했던 과학에 기반을 둔 학문 중 하나인 건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그리고 주류에 속해 있었다면 당시 지배층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굳이 어려움을 겪어가며 고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 략>
건축공학과와 의산문답 사이의 관련성은 무엇이 있을까. 홍대용이 연구했던 실학에 건축이 포함되기는 했을 것 같다. 건축은 아마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에 공에 속하지 않을까. 성리학적 직업 귀천을 따졌을 때 상업보다는 공업이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건축업은 예나 지금이나 노가다라고 하여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평등의 원칙에 따르면 직업에 대한 귀천을 따지면 안되겠지만 성리학적 사고는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직업의 귀천을 많이 따지는 것 같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