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정치와 세도정치
- 최초 등록일
- 2014.06.06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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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탕평책 실시의 배경
Ⅲ. 영조대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정비
Ⅳ. 정조대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정비
Ⅴ. 맺음말
Ⅰ. 머리말
Ⅱ. 세도정치의 성립
Ⅲ. 세도정치의 성격
Ⅳ. 세도정치의 전개
Ⅴ.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서 상호 유기적 연결을 가진 일련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 후기의 정치는 탕평론 및 세도정치의 전개라는 특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물론 18세기 탕평론이 제시된 데에는 일정한 배경이 있었고, 영조대에 전개된 완론탕평(緩論蕩平)의 입장과 정조대에 시행되었던 준론탕평(峻論蕩平)은 각기 상이한 특성을 지닌 것이었다. 이 시대에 탕평론이 제시된 배경과 그 전개, 또한 그것을 이끌었던 왕정체제 모습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Ⅰ.탕평책 실시의 배경
1. 붕당 정치의 전개
양반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는 속에서 위정자들은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통치 질서를 개편하고 수취 체제를 조정하여 당면한 위기에서 우선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붕당 정치를 통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보다 강화하고자 하였다.
붕당 정치는 사림의 집권과 더불어 모색되었다. 조선 시대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왕이 주재하였다. 그런데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왕권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림들은 붕당을 조성하여 정치 질서를 개편함으로써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2. 붕당 정치의 변질
양반 지배 세력의 결속을 강화하려는 데에 그 의도가 있었던 붕당 정치는 붕당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면서 변질되어 갔다. 그러나 이른바 경신환국 이후 붕당 사이의 대립 양상은 크게 달라져 갔다. 즉, 집권당은 철저한 탄압으로 상대당이 재기하는 것을 막았다. 이로부터 붕당 정치의 기본 원리는 무너지고, 상대 세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일당 전제화의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