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역사와 분포 그리고 특성, 그리고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전략들을 담은 글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글
I.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가. 러시아 연해주로의 이주 (1860년대)
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1937-1953)
다. 거주제한 해제에 따른 자유여행 (1954-1990)
라. 소련붕괴 후 중앙아시아를 떠나는 재이주 (1990년대 이후)
II.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현황과 분포
1. 2000년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현황
2.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분포
III.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특성 이해
IV.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선교 전략 제안
나가는 글
본문내용
II.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현황과 분포 김호준, 앞의 책, p. 404-501.
1. 2000년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현황
고려인들은 강제이주와 탄압 그리고 차별 속에서도 강력한 재기의 집념으로 구소련 지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초기에는 자영업을 중심으로 각자의 처지에 따라 외판원, 보따리 장사, 다단계 판매원, 매점 종업원, 택시 운전사, 공사장 인부, 건축업, 도소매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갔다. 후에는 무역, 유통업, 주택 및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도 하였다. 자영업의 품목 순위는 의류가 가장 많고 다음이 식료품, 식당운영, 잡화상, 야채상, 자동차부품상 등의 순이다. 고려인 가운데 정계와 재계로 진출하여 새로운 유력자로 인정받는 자들도 나타났다. 카자흐스탄에는 종업원 12,000명을 둔 ‘카스피스키’ 그룹의 총수인 채 유리, 최대 건설사인 ‘쿠아트’의 사장 남 올레그가 있으며 전자제품 시장의 90%를 고려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현지 은행업계 15위권인 우르사 방크의 회장 김 이고르, 러시아 CD 시장의 10%를 장악한 컴퓨터CD제조업체인 ‘미렉스’의 사장인 태 스타니슬라브, 러시아 제 4위 제분 제빵회사이며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한 장 류보미르, 연해주 우수리스크 지역 제1의 고려인 갑부로 알려진 정 알렉산드르, 건축, 언론, 사산업, 임가공업, 농업 관련의 20개 회사를 운영하는 박 발렌틴 등이 있다. 사할린 고려인사회는 서울올림픽과 한-소 수교 이후 활력을 찾았고 사할린 대륙붕에서 석유와 가스가 솟아나고 수산업과 석탄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중산층으로 성장했다. 우크라이나에도 학자, 의사, 정치인, 사업가 등 상류층으로 진출한 사람이 많다.
과거 중앙무대로의 정계진출이 거의 없었던 러시아에서는 소련 해체 후 5명이 연방의회로 진출하였다. 1995년에 고려인 최초로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에 이르쿠츠크에서 정홍식(러시아이름 텐 유리)과 하바로브스크에서 최 발렌틴이 당선되었다. 그 외에도 뉴스앵커 김마리나, 사하공화국 국회부의장 김 알렉산드르, 블로그다주 부지사 박 아나톨리, 흑해함대 부사령관 김 뱌체스리프, 군법무관 출신 소장 김 아파나시 등이 있다.
참고 자료
김호준,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주류성출판사
이원봉,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이주에 관한 연구」 2000
노영돈, 「구소련의 고려인 정책과 현CIC내 한인의 실태」, 인천대학교, 1998
이범관, 「무국적 고려인 문제에 대한 고찰과 정책 제언」, 2008
이형근, 「고려인 디아스포라와 선교, 선교와 신학」, 선교와 신학, 2005
최한우, 「통계로 본 러시아 고려인 사회」, 전남대학교, 2004
강니꼴라이,「고려인 사회의 현황과 쟁점」,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2006
이범관, 「무국적 고려인 국적취득사업을 위한 현지조사 보고서」, 이범관 정책자료집,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