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이방원,신권과 왕권 관계,공양왕 재위기의 신진 세력 분화,조선 건국의 가속화,삼봉 정도전
- 최초 등록일
- 2014.06.02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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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시대적 배경
3. 조선 건국의 가속화
4.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
5. 태종 이방원(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
6. 갈등의 시작
7. 엇갈리는 정치적 견해
8. 갈등의 끝
9. 정도전 숙청 그 후: 태종의 강력한 왕권 통치
10. 통치 권력의 집중 문제: 다른 사례
11. 현대 사회와의 비교
12. 결론
본문내용
서론
고려 말 사회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신진사대부는 문제의 해결 방식을 놓고 내부개혁과 역성혁명의 두 계파로 나누어지게 된다. 두 세력의 대립 다툼은 결국 역성혁명파의 승리로 끝이 났고, 그 결과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한 뒤 조선이 건국되었다.
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의 건국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 둘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이방원과 정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조선 건국을 향한 큰 뜻을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건국 후 두 사람은 첨예하게 대립하였으며 결론적으로는 이방원이 그를 제거한 뒤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들이 대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서로 신권과 왕권의 조합을 둘러싼 정치 사상적 배경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함으로써 결국에는 왕권 강화를 이루었지만, 이후 조선의 역사는 신권과 왕권의 대립으로 연속되었다. 한편, 통치 체제는 왕권 통치와 민주주의로 다를지언정, 국가를 통치하는 큰 구조 자체는 과거와 오늘날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와 오늘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이러한 과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가?
시대적 배경
고려 말 대내외적 혼란
고려는 말기에 이르면서 대내외적으로 정치적사회적경제적군사적 등 여러 분야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내적으로는 원(元) 간섭기 부터 시작된 권문세족(權門勢族)의 경제적 수탈과 무신집권기(武臣執權機)에 가속화 된 하층민의 저항이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명(明)-원 교체기에 있었던 혼란과 내부 혼란을 틈타고 온 외적의 침입이 대표적인 혼란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대내적 요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다. 12세기 말에 있었던 무신정변(武臣政變) 이후 기존 권력이 무신들로부터 옮겨갔지만 그들의 강압 정치 등 날로 커지는 정치적 파행과 이의민의 경우와 같이 무신 집권기의 정치 세력이 기존 귀족 가문이 아닌 천한 가문이라는 생각은 하층민의 저항을 이끌기에 충분하였다.
참고 자료
『朝鮮太祖實錄』
『朝鮮太宗實錄』
편집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한국인물사연구원, 『(읽기 쉬운)고려왕 이야기』, 타오름, 2009
신동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살림, 2007
이영래(2000), 「태종과 세종의 경연운영과 정치적 의미에 관한 연구」, 서울: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