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문신
- 최초 등록일
- 2003.06.13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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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문신에 대해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1. 서론
2. 국왕의 권위
3. 무신 정권과 문신
4. 최씨 정권과 문신
5. 무신정권기 문신의 정치의식과 그 성향
6. 결론
본문내용
1. 중방 정치와 국왕
고려의 전통적인 右文政策에 따른 武班에 대한 차별대우, 일반군인들의 불평불만 그리고 의종의 失政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마침내 武臣亂이 발발하였다. 그러나 무신란은 무신들의 상승된 지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무력의 핵심을 이루는 일반군인들이 전적으로 동조하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의종 24년(1170) 8월 鄭仲夫, 李義方 등이 주동이 된 「庚寅의 亂」이 성공하자 집권무신들은 많은 문신을 살해하고, 국왕인 의종을 폐출하여 거제도로 유배시켰다. 이어 王弟 명종을 새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명종 때에는 아직 무신정권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집권무신들 간의 정권다툼이 치열하였고, 정치 역시 고위 무신의 합좌 기관인 重房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高麗史節要》권 12의 명종 때의 사료에서 중방의 권력에 대해 살펴보면, 경찰 내지 형옥의 권한, 인사행정, 시장가격의 사정과 함께 집권무인들의 전횡을 억제하는 자기조절의 기능까지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신정권의 전기에 해당하는 명종 때에는 아직 무신집정의 위치가 확고하지 못하여 무신 세력의 중심기구인 중방에 의지하여 무신정권을 보전하였으므로 중방은 무신정권에 대한 항거를 방지하는 중심체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명종대는 문반에 대한 탄압과 견제가 가장 심한 때이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張叔卿, 1981. 〈高麗 武人政權下의 文士의 動態와 性格〉《韓國史硏究》34
·金돈圭, 1981. 〈高麗 武人執權基 文士의 政治的 活動〉《韓 劤博士 停年記念史學 論叢》
·朴菖熙, 1977 〈武臣政權時代의 文人〉《한국사》7
·〈무신 정권기의 국왕과 문신〉《한국사》6,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