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 옥갑야화와 홍길동전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3.06.1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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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옥갑야화는 홍길동전의 ‘율도국’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 이를 먼저 살펴보자.
각설, 길동이 제전을 극진히 받들어 삼상(三喪)을 마치매 모든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을 힘쓰니 병정양족(兵精糧足)한지라. 남해 중에 율도국이란 나라이 있으니 옥야(沃野) 수천 리에 진짓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길동이 매양 유의하던 바라, 제인(諸人)을 불러 왈,
"내 이제 율도국을 치고져 하나니 그대들은 진심(盡心)하라"
하고 즉일 진군할새, 길동이 스스로 선봉이 되고 마숙으로 후군장(後軍長)을 삼아 정병 오만을 거느려 율도국 철봉산에 다다라 싸움을 돋우니, 태수 김현충이 난데없는 군마(軍馬)가 이름을 보고 대경하여 일변 왕에게 보(報)하고 일지군(一枝軍)을 거느려 내달아 싸우거늘, 길동이 맞아 싸워 일합에 김현충을 버히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안무하고 정철로 철봉을 지키우고, 대군을 휘동(揮動)하여 바로 도성을 칠새, 격서를 율도국에 보내니 하였으되, "의병장 홍길동은 글월을 율도왕에게 부치나니, 대저 임금은 한 사람의 임금이 아니요, 천하 사람의 임금이라. 내 천명을 받아 기병(起兵)하매 먼저 철봉을 파하고 물 밀듯 들어오니, 왕은 싸우고져 하거든 싸우고 불연즉 일찍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왕이 남필(覽畢)에 대경 왈,
"아국이 전혀 철봉을 믿거늘, 이제 잃었으니 어찌 저당(抵當)하리오."
하고 제신을 거느려 항복하니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백성을 안무하고 왕위에 즉한 후 율도왕으로 의령군을 봉하고 마숙, 최철로 좌우상(左右相)을 삼고 기여(其餘) 제장(諸將)은 다 각각 봉작(封爵)한 후 만조 백관이 천 세(千世)를 불러 하례하더라.
왕이 치국삼년에 산무도적(山無盜賊) 하고 도불습유(道不拾遺)하니 가위 태평 세계러라.
― 필사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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