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복원사업의타당성] 청계천복원사업의타당성검토및해외사례
- 최초 등록일
- 2003.05.29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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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계천사업의 타당성검토와 해외사례에 대해 알아본 자료입니다.
목차
Ⅰ. 청계천의 역사
Ⅱ.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배경
Ⅲ. 청계천 복원사업현황 및 주변상황
Ⅳ. 청계천 복원사업의 향후 효과
Ⅴ. 해외사례
본문내용
Ⅰ. 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은 길이 3,670m, 최대 너비 84m로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조선 왕조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 제3대 왕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兩岸石築)·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다.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이때에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
8·15광복 후에도 청계천의 유지관리에 힘써 왔고,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 19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주교(舟橋) 1∼4가 간을 완공하여 너비 50m의 간선도로를 만들었다. 1967년~1976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 상류에서 성동구 사근동까지 5.4km 구간은 복개되었으나 중랑천 합류 지점까지의 2.4km 구간은 복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