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의 정치사상
- 최초 등록일
- 2014.01.28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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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노장의 생애와 시대
2. 반자(反者)는 도(道)의 운동이다.
3. 무위(無爲)이나 불위(不爲)는 없다.
4. 제물외생(齊物外生)
5. 재유(在宥)
본문내용
노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었다. 노자는 멸망한 은나라의 유사(遺士)였을 것인데, 고현(苦縣)으로 이사와서 살았다. 옛날의 예(禮)에 익숙했기 때문에 주나라 수장실(守藏室)의 기록관이 되었다. 그의 나이는 공자보다 많았고, 공자와 더불어 예를 논한 적도 있는데, 공자가 그를 칭찬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노자는 망국의 후예로서 난세에는 유위(有爲)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마침내 도덕의 학문을 닦음으로써 “스스로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썼다”. 근세의 학자들 가운데는 도덕경(道德經)을 노자가 지었다는 것을 의문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자가 세상을 피하여 자신을 감추려고 한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를 드러내는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5천 자의 책은 그의 후학인 태사 담(太史 ?)의 저작인지도 모른다.
장자는 “삶의 자취가 없고, 행동이 전하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체로 노자와 비슷하다. <사기>에 따르면 장자는 몽(蒙)의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다. 그는 양혜왕과 제선왕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의 학문은 박학해서 모든 서적에 막히는 것이 없었는데, 근본은 노자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의 문장은 매우 훌륭했고, 세상일을 가리키는 것이 적절하였고, 그로써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으므로 당시의 석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공격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웠다.
노장의 사적에 관하여 전해진 사실은 매우 적으나, 두 사람이 모두 송나라와 관계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송은 은나라 유민의 나라로 노장의 사상은 은문화를 배경으로 했던 것이며, 이 점에서 유묵과 함께 논의될 수 있다. 유묵과 달리, 노장은 소극적인 경향을 띠었으며, 손퇴(遜退)와 영정(寧靜)을 개인의 안전과 만족의 방법으로 삼았다. 그들의 태도는 지극히 비판적이었다.
노자의 정치사상은 공자의 그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자는 평화로운 시대의 부흥을 바랐고, 노자는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걱정이 많았다. 그들은 학문의 소재 또한 달랐다.
참고 자료
소공권, 『중국정치사상사』, 최명, 손문호 공역,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