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 견학, 국가기록원 관람
- 최초 등록일
- 2014.01.11
- 최종 저작일
-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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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국가기록원이란?
3. 국가기록물 관리에 대하여.
4. 국가기록원 관람
5. 결론
본문내용
1. 머리말
최근 3·1운동과 간토(關東)대학살, 강제징용 피해자 명부가 60년 만에 주일 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발견되면서 정부의 기록물 관리 체계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실록을 편찬한 ‘기록의 나라’가 사료를 없애거나 제대로 안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몇 가지 사례로 여실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특히 강제징용 피해자 등 명부 재발굴은 최근 검찰 조사 결과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담록 초안이 삭제됐고, 국가기록원으로도 미이관 됐다는 사실과도 맞물리면서 ‘나라의 수치’라는 비판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예로부터 기록문화에 충실하였던 민족이었다. 즉 한국 고대 고분속의 기록에서부터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등 국가의 역사기록을 철저히 남겼고,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등 공공기관의 기록 또한 마치 회화를 보듯 그 내용이 매우 상세했다. 뿐만 아니라 미암일기, 난중일기 등 전란의 와중에서도 개인에 의하여 기술된 기록물가지도 참으로 상세하다. 그리고 각 씨족의 가문마다 그 문중의 유명인사가 남긴 문집 또한 즐비하게 생산되어 각 가문마다 문집이나 족보를 발행하지 않은 집안이 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수많은 전란을 거치면서도 그 기록물의 보존 또한 어느 민족보다 투철하였으며 국가적 활동의 역사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또 관리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이 수많은 기록물들을 남긴 한국의 기록문화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즉 일제강점 아래 항일독립투사 및 그 운동관련 자료들은 후환을 염려하여 의식적으로 아예 그 기록의 생산마저 단념하였고, 해방 후 좌우익의 대립상황 속에서는 유명인사의 기록들은 은폐되었고, 625전쟁 중에는 수많은 기록물들이 소멸되었다
기록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인류는 기록을 만들고, 기록은 역사를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역사란 곧 기록이다. 기록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글, 그림 등의 형식으로 나타내어지는, 즉,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기록이 없다면 역사도 없다. 기록을 함으로써 우리의 역사가 발전되어 온 것이다. 기록은 단지 종이에 써지는 낱낱의 글자의 집합이 아니다. 세월과 사건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보존도 중요하다. 기록 보존소와 같은 정부기관에 따라서 기록이, 역사가 보존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