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회담] 1951년 한일예비회담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3.12.25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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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51년 한일예비회담의 배경과 내용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한일예비회담의 배경
1) 한일예비회담 성격과 미국의 역할
2) 재일한국인 문제
3) 회담의 준비
2. 회담경과와 합의
1)회담초기의 분위기
2)미국이 회담에 미친 영향
3)재일한국인문제분과위원회
4)선박분과위원회
5)협상의 교착
3. 대일외교의 한계
본문내용
1. 한일예비회담의 배경
1) 한일예비회담 성격과 미국의 역할
전후 한일관계의 개선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부터였다. 조약에서 한국의 이익은 배제되었지만, 한국에 대한 제3자적 효력이 적용되었다. 여기에는 한일관계의 기본 문제가 된 배상과 청구문제, 과거사 반성과 청산문제,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문제, 독도 문제 등의 핵심사항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회담참가가 배제되어 일본과 별도의 조약체결이 필요했고, 일본과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재일한국인 법적지위를 처리하기 위한 협상이 필요했다.
한일회담에서 미국의 역할 문제와 관련해 무초대사는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으로 한일문제를 처리하면 배상, 청구 등 한일 양국의 입장을 적절히 조절, 결정할 수 있지만, 쌍무협상에 맡기면 한국정부가 배상, 청구 등 한국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을 강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이 주도적으로 한일협상을 주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무부의 입장은 달랐다. 한국이 조약서명국으로 참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같은 국제협상의 틀을 통해 한일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양국 간 협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정도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볼드를 비롯한 연합국최고사령부는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에 반대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정부가 의제확대와 미국의 조정역할을 제의했을 때 기본적으로 이것을 지지했고, 시볼드에게 일본에 전향적인 대응을 요구할 것을 지시한 바 있었다. 나아가 ‘준조정자 기능’ 을 할 미국정부 대표의 파견을 검토한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는 전쟁 중인 한국정부에 대한 국제정치적인 고려의 산물로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볼드는 미국의 조정자 역할에 반대하며, 미국의 간섭없이 한일 양국간의 쌍무회담으로 진행되어야 ‘선의가 아니라는 오해’ 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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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