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 창덕궁
- 최초 등록일
- 2013.12.22
- 최종 저작일
- 2012.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의 궁궐에 대한 설명과, 창덕궁의 설명, 답사후 느낀점
목차
1.조선시대의 궁궐
1)조선궁궐의 역사
2)창덕궁과 경복궁은 어떻게 다를까?
2.우리나라의 자랑 창덕궁
1)창덕궁의 발자취
2)창덕궁에서 눈여겨 볼 것들!
3.창덕궁으로 입궁!
4.느낀점
본문내용
조선의 궁궐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시작되었다. 1392년에 고려(高麗)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 조선을 개창한 태조(太祖) 이성계는 재위 3년째 되던 1394년에 고려의 옛 수도인 개경(開京)에서 오늘날의 서울인 한양(漢陽)으로 천도한다. 도읍을 옮겨 오면서 궁궐과 종묘(宗廟), 사직(社稷), 도성(都城) 등 조선이 앞으로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데 필요한 시설들을 건립하게 되는데 이때 처음 지어진 궁궐이 경복궁(景福宮) 이었다. 태조 때 처음 지어진 경복궁은 모두 390여 칸에 달하는 규모로 당시 경복궁이라는 이름과 근정전(勤政殿), 사정전(思政殿), 강녕전(康寧殿), 연생전(延生殿), 경성전(慶成殿) 등 궁내의 주요 전각의 이름은 태조를 도와 조선왕조를 개창,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처음 지어진 경복궁에서 태조 7년이던 1398년에 정안대군 방원(후일 태종)이 방번과 세자 방석 형제를 제거하는 이른 바 '왕자의 난' 이 일어나게 된다. 두 아들을 잃은 태조는 실의에 빠져 결국 둘째 아들 방과를 세자로 세웠다가, 얼마후에 세자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데 그가 바로 2대 정종이다. 하지만 정종은 피비릿내 나는 한양에 머무르는 것을 꺼려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고려의 옛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갔다. 한성이 다시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정안대군이 3대 태종으로 즉위 하면서부터이다. 태종은 부왕 태조의 뜻을 이어받아 재위 5년이던 1405년에 다시 한양으로 재 천도한다. 한양으로 재 천도하게 되면서 경복궁을 수리하게 하고 새로 향교동이라는 곳에 새로운 궁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창덕궁(昌德宮)이다. 즉, 정궁(법궁)인 경복궁에 대칭하여 동쪽에 창덕궁이라는 이궁을 세웠던 것이다. 태종때 지어진 창덕궁은 경복궁에 비해 규모는 작았으나, 경복궁이 법도에 따라 일직선 배치되었다면 창덕궁은 다소 자유롭게 배치되었다.
참고 자료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2091101/16466802)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 contentsid=4657)
네이버카페(http://cafe.naver.com/bookmothersclub.cafe iframeurl=/ArticleRead.nhn%3Farticleid=26721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
1920년 창덕궁 벽화 조성에 대한 연구 (DBpia)
창덕궁 인정전 실측 보고 (DB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