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외교 정책
- 최초 등록일
- 2013.12.18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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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고려의 건국될 시기의 배경
Ⅲ. 고려의 대외관계
1.고려와 송의 관계
2.고려와 거란(遼)의 관계
3.고려와 일본, 여진, 서역과의 관계
IV.고려의 대외정책의 의의
본문내용
高麗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해 봤을 때 가장 실리적으로 외교관계에 임하였다.
다른 나라라고 그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외교에 실리적으로 움직인 고려의 경우는 특별하다고 생각되어 본 글에서 구체적인 서술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對外 强硬策은 自主이고 對外 宥和策은 事大’라는 종래의 관점을 버리고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려라는 국가는 한없이 사대 밖에 하지 않은 국가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强大國 외교에만 치우친 우리나라의 외교 정책의 폐해에 대한 반성을 이런 고려의 외교정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Ⅱ.고려의 건국될 시기의 배경
고려의 건국은 918년에 太祖 王建이 궁예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름으로써 건국되었다. 이 때의 동아시아의 배경을 보면 한 마디로 大分裂의 時代였다.
우선 중국이 분열되었다. 唐의 宣撫節度使인 朱全忠이 당을 멸망시키고(907년), 후량(907~923)이 세워졌다. 그러나 후량이 금방 무너져 버리고, 후당, 후진, 후한, 후주의 여러 왕조들이 차례로 교체 되었으니 이를 ‘5대’라고 불렀다. 한편, 양자강 이남에서는 ‘5대’를 인정하지 않는 10여개의 독립정권이 세워지니 이를 ‘10국’이라고 불렀고 이에 이 둘을 합쳐 ‘5대 10국’이라 불렀다.
그리고 만주에서는 906년부터 발해와 거란의 전쟁이 매우 잦았다. 결국은 거란이 926년에 발해를 멸망시키고 이 기세를 몰아 중국본토를 공격하였다. 이에 혼란했던 당시 송나라는 만리장성 북쪽 燕運 16주를 빼앗기게 된다. 거기에다 한반도에서는 後三國 시대가 전개되고 있었다.
고려건국 전까지의 후고구려, 후백제, 신라의 대립이 있었고, 고려건국 이후 고려와 후백제의 대립이 매우 심했다.
이를 모두 통칭하여 동아시아의 대분열 시대라고 하며 전란이 끊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각 지역에 새로 등장한 강력한 세력에 의해 통합되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