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박지원-호질
- 최초 등록일
- 2013.12.08
- 최종 저작일
-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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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연암 박지원
1) 생애
2) 문학과 사상
2.《熱河日記》
본문내용
1. 연암 박지원
1)생애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소설가, 문신, 학자로서 1737년에 서울 반송방에서 태어났다. 연암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이 높던 명문대가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지돈녕부사를 지낸 할아버지 ‘박필균’에 의해 양육된다. 할아버지는 잡병이 많고 약질인 연암을 불쌍히 여겨 공부 보다는 종들과 밖에서 뛰어 놀게 하였다.
16세 때 이보천의 따님과 결혼하고 장인에게서 <맹자>를 배우고, 처삼촌 ‘이양천’에게 <사기>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 ‘이재성’과는 더불어 평생의 문우로 지냄과 아울러 그의 학문에 충실한 조언자가 되었다.
1760년 할아버지가 죽자 생활은 더욱 곤궁해졌고, 그 사이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그 후, 과거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 백탑(白塔)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며, 박제가, 이서구 등과 이웃하면서 학문적 깊은 교우를 가졌다. (이때에 홍대용, 이덕무, 정철조 등과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대해 자주 토론하였다.) 이 당시의 국내정세는 홍국영이 세도를 잡아 벽파에 속했던 그의 생활을 더욱 어럽게 되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어 연암협으로 은거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 있는 동안 농사와 목축에 대한 장려책을 정리하게 된다.
1780년(정조 4)에 사촌형 박명원과 함께 청에 가서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 《熱河日記》를 쓰게 된다.
그 뒤 뒤늦은 1786년에 음사로 선공감 감역에 제수된 것을 필두로 여러 관직을 지냈다. 1801년 신유사옥 사건을 계기로 실학자들의 공개적 활동이 엄금되자 연암은 양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서, 저술을 계속한다. 그러다 1805년, 69세 때 자택에서 일생을 마쳤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