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가
- 최초 등록일
- 2013.12.07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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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 머리말
I. 객가의 형성
II. 토객계투(土客械鬪)와 배상제회(拜上帝會)
III. 객가의 후예
IV, 맺음말
본문내용
객가는 객민가운데에 특정한 집단을 말하는데, ‘객민(客民)’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지역민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이주 해 온 이주민을 말한다. 객민들은 서진(西晉)말 영가(永嘉)의 난(亂)이 계기가 되어 한족의 일파가 여러 계기로 광서(廣西)지방으로 이주 하게 되었고, 잦은 전투와 자연재해로 피폐해진 사천(四川)지방을 재건하기 위해 유민의 초무정책을 시행해 사천(四川)으로 많은 객민들이 유입되었다. 이렇게 객가는 객민의 이주와 함께 거주지를 옮기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이러한 문화는 고유의 민족성으로 굳혀져서 오늘날 하나의 민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렇게 곳곳으로 이주하면서 토착민들과 융합하면서도 다른 방식의 문화를 꽃피우고, 자신들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근대 이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객가의 형성과 그들의 활동 그리고 현재 객가 혈통들의 활동을 고찰해 보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I. 객가의 형성
객가의 형성과정은 객민의 형성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객민들은 삶의 터전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토착민과의 반목, 동화 등 복합적 마찰을 겪으면서 객가가 문화의 고유성을 갖게 된 것이다.
광동지역민들이 광서지방으로 이동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광동지역의 부유한 계층들이 광서와의 무역이나 광산개발 등을 통해 부를 얻기 위한 이주가 있다. 부유한 이주민들은 광서의 상업을 독점하고 자본을 축적하면서 권력과 결탁해 봉기세력의 표적이 되면서 많은 공격을 받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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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俊甲, 「移住, 定着, 同化17C~20C 四川 客家의 軌跡」, 『東洋史學硏究』第101輯, 東洋史學會, 2007.
朴基水, 「乾降 嘉慶 道光年間 廣西의 客民과 客家」, 『明靑史硏究』, 明靑史學會,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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