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 최초 등록일
- 2013.12.05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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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갑신정변은 1884년에 발생한 정변으로써 김옥균이 있다. 먼저 갑신정변이 먼저가 아니라 우선적인 것은 시대로 보면 유흥기, 오경석, 박규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경석은 조선의 역관으로써 중국을 드나들며 그 나라에 있는 문물과 조선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인 오세창의 회록에 따르면 아버지는 중국에 있을 때 세계 각국이 각축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느낀바가 컸다고 한다. 그리고 후진국이라는 각국의 흥망사를 연구하여서 우리 조선이 자국정치의 부패와 세계의 대세에 관해 많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약세가 되어버렸다. 허나 이것이 조선에게 있어서 장례에 큰 비극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크게 한탄하였다. 그리고 조선에 돌아와 친구인 유흥기와 함께 사상적인 동지로 결합을 하며 조만간에 내 나라가 안 좋은 일로 꼬이게 될 거라는 것을 짐작하여 풍전등화에 탄식하며 훗날에는 혁신이 일으켜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와 추가되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는 실학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의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문화인 서양이라는 사상을 도입함으로써 개화사상과 실학사상의 차이점을 두었다. 우선 실학사상은 기본적으로 봉건적인 틀에서 머무르는 한계에 놓이지만, 근대적 개혁에서는 사상적으로 무기로 되기에는 자본주의적인 관계를 대표하는 계층들이 이익과 직접 결합을 하기 때문에 개화사상이 1960년대 발전이 되면 그것이 경제관계의 대한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내용에서는 조선의 정치적인 모순을 자각할 필요가 있고, 세계의 추세에 대해 순응하는 국내의 정치적 혁신을 말한다. 구미침략의 계기로 인하여 조선민중의 반침략투쟁을 반영한 애국사상과 선진문화를 도입함으로 상공업을 발달시켜 부국강병을 도모하여야한다고 본다. 개화사상가인 세명의 인물들은 각자 역관, 의사, 중인이었고, 평민들보다는 계급이 있었기에 정치적인 면에서는 제약이 따랐으므로, 정치기구를 통해서는 개화사상을 반영시키어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들은 민중을 기반으로 근대적인 개혁을 수행하기에 이르지 못하였고, 이론적인 범위에서 벗어나질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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