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윤리자본주의정신
- 최초 등록일
- 2013.12.03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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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자본주의 정신과 칼뱅주의적 소명의식소유욕, 금전욕, 망설이지 않는 영리 충동은 언제나 어느 곳에나 있었다. 일체의 규범에 종속하는 것을 배제하고 생활을 위해서 필요 이상의 재화를 취득하는 것, 즉 투기 자본주의, 약탈 자본주의, 식민지 자본주의, 기타 이것에 속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화폐를 사용하는 모든 경제 구조의 고유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윤추구의 동기에 의해서 작동하는 모험가적 자본주의는 어느 시대에서,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다. 그러나 윤리적 측면에서 영리추구를 긍정한 것은 자명한 일이 결코 아니었으며 어느 일정한 시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그것도 서구에서만 있었던 일이다. 이와 같은 사태가 생겨나기 위해서 서양의 시민계급은 어느 특정한 생활태도의 훈련을 받고 합리적이며 방법적인 노동을 도덕적 의무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이러한 생활태도를 가져온 것이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다. 자본주의 정신은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소명의식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인해 비로소 노동과 이윤추구 행위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금욕적 생활과 저축 관념을 매개로 근대적 자본축적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로 16, 17세기의 종교개혁과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트 윤리, 특히 칼뱅주의를 지적한다. 칼뱅주의는 인간의 운명은 태초로부터 정해진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직업노동과 부의 추구를 신의 섭리로 받아들일 때 구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육욕과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신을 위해서’ 부유해지도록 노동해야 한다는 청교도적 관념이 성립한다. 여기서 부의 추구가 사악한 것으로서 위험시 되는 것은 ‘게으른 휴식과 죄 많은 삶의 향락에 대한 유혹’일 경우에만, 즉 ‘근심 없이 안일하게 살기 위한 것일 경우’에로 한정된다. 신을 위한 경우라면 부의 추구는 허용될 뿐만 아니라, 더 적절하게는 명령되는 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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