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사생활의 역사 3권 요약문
- 최초 등록일
- 2003.05.09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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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독교에서 공동체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 두 가지의 모순존재와 집단적인 종교로의 교회가 16세기 종교개혁이 양심과 사생활 적인 면의 탄생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토렌토 공의회 이후 카톨릭 교회는 개신교의 공격에 직면하여 그리고 공의회의 결정 사항과 기존 교리의 연장선상에서 집단적 종교 행위 가운데 일부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를 보였고 개인적 신앙심이 강조되었다. 미사는 집단적인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공동 예배라기보다는 개인들의 기도를 합쳐진 것에 불과했는데, 17세기 후반 미사는 단순히 개인적인 예배 행사가 아니라 참석자들 모두의 참여를 촉구하는 종교 의식의 본질적인 행위로 간주하 는 데에 동의했다. 미사 참석자들은 사제가 집전하는 의식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수단들이 강구되기 시작했다.
신자들의 미사 참여를 용이하게 한 또 다른 수단은 라틴어 판 뒤에 프랑스어 판을 덧붙인 미사 전례서의 출판이었다. 개인용 예배서인 미사 전례서가 무엇보다도 신자들을 성스러운 제사에 일치시키기 위한 주요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문맹으로 의해서 미사전례서의 기능을 이용한 미사의 단점이 생겼다. 미사는 온건한 태도로 개인적인 기도를 허용하였고 미사의 중요성은 증가하였다. 반면 일요일 오후 저녁기도의 사람들이 외면했다.
카톨릭 신자로서 지켜야 할 또 다른 의무사항은 일년 에 한 차례 부활절에 행해지는 고해와 영성체였다. 17세기 초에 이르기까지도 프랑스 도처에서는 공동고해와 총사죄의 관행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고해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가벼운 죄와 부주의는 공동고해를 통해 용서받을 수는 있었으나 공동고해는 성사로서의 가치를 지니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고해성사의 본질은 개별적인 죄의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사생활의 역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