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일제하의 언론
- 최초 등록일
- 2003.03.19
- 최종 저작일
- 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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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기저기 많이 조사해보고 연구한 리포트 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기 바랍니다.
목차
<일제치하 전 개화기말의 신문>
1. 황성신문
2. 제국신문
3. 협셩회회보, 매일신문
4. 대한매일신보
5. 신문지법 제정과 신문들의 폐간
6. 한일합방이후의 언론
<일제하의 신문: 친일지인가 민족지인가- 조선,동아일보 중심>
## 배경
1) 문화정치와 민영신문의 허가
2) 조선일보 창간과 반일 언론 활동
3) 동아일보 창간과 반일 언론 활동
4) 조선·동아일보의 친일 언론 활동
## 정리
## 나오며
본문내용
<일제하의 신문: 친일지인가 민족지인가- 조선,동아일보 중심>
3·1운동 직후 창간된 조선일보는 곧이어 창간된 동아일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일제는 철권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하면서 1920년 3개의 조선인 신문을 허가했다. 대정실업친목회의 조선일보, 김성수의 동아일보, 민원식의 시사신문 등이다. 이 신문들이 일제하에서 민족지로써의 역할을 했느냐를 평가하기에 앞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시대적 상황의 고려없이 현재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정확하지 못한, 잘못된 평가를 초래할 수 있다. 때문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염두해 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한 언론행위를 살펴보고 평가해 보고자 한다.
## 배경
1) 문화정치와 민영신문의 허가
1919년 8월 12일 일본 총독은 헌병경찰제의 폐지, 조선인의 관리 임용 및 대우 개선, 언론 집회 출판의 고려, 지방자치 시행을 위한 조사 착수, 조선의 문화와 관습의 존중 등을 시정 방침으로 천명했다. 이로써 가혹한 무단 통치가 끝나고 이른바 문화정치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문화정치는 반도 통치의 기본 방침에서는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었다. 일본의 식민 통치를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외견상 억압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유화시키기 위해 통치의 색조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