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초 신문- 한성순보
- 최초 등록일
- 2003.03.13
- 최종 저작일
- 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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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성순보의 발행
박문국
한성순보의 형태와 내용
한성순보의 성격-신문사설내용 포함(4개)-지구론
-회사설
-논천하시지국
-논서일약개정안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를 담은 한성순보
광고에 실린 문구포함
맺음말
본문내용
한성 순보는 1883년(고종 20년) 10월에 정부의 박문국에서 발간한 신문으로 열흘에 한 번씩 나왔다. 또한, 1년만에 폐간되고 1886년에 『한성주보(漢城周報)』로 개제되었다. 이것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한문체로 발간되었다 . 일간이 아니고 관보(官報)의 의미도 있어 신문이라고 하기에 미비한 점도 있으나, 새로운 소식을 게재하며 정기적으로 발행되었으며, 그 체계가 신문의 형태를 따랐기 때문이다.
1882 년 말 임오군란의 결과 일본에 수신사로 간 박영효는 신문이 개화를 추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귀국하면서 근대 시설의 수용 <신사 유람단(일본), 영선사(청) 파견 이후 활발> 하면서 인쇄술 영역에서의 활동으로 신문제작을 위하여 일본의 신문기자와 인쇄 기술공을 데리고 왔다. 즉,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후쿠자와와 개화문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한성에 민중 계몽의 수단으로 신문을 발간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후쿠자와가 내세운 명분은 민중 계몽이었겠지만, 실제는 신문매체를 도구로 하여 그들의 조선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일제의 문화침략 정책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귀국 후에 한성 판윤으로 임명되자, 신문 제작의 실무를 유길준에게 위촉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