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한국교회 핍박
- 최초 등록일
- 2013.08.19
- 최종 저작일
- 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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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정책에 대해서
1) 일본의 신도
2) 교육기관부터 강요시작
2. 신사참배에 대한 굴종과 반대운동에 대해서
본문내용
1.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정책에 대해서
1) 일본의 신도
일본 군국주의는 1931년 만주를 병탐하고 이어 1935 년 중국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중국을 침략 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의 대륙 침략에 있어서 병참기지로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본으로서는 한반도의 황민화 정책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일본의 황민화 정책은 우리의 말과 문화를 말살하고 일본화하려는 정책이었다. 그 일환으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신사참배를 강요 했다.
처음에는 학교와 친일 단체를 통해서 권장하는 방법을 썼으나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 날 무렵부터는 우리 민족에게 적극적으로 일본의 신도인 신사참배를 강요 하기 시작했다. 문헌에 의하면 일본의 '신도' 란 그 나라의 토착적인 종교적 신앙과 관습에 붙여진 이름이며 대륙에서 건너간 불교에 대응하여 일본의 본래부터 존재하던 신앙과 의례를 지칭한다고 되어 있다.
<중 략>
그러던 중 1935년 11월 평양 기독교계 사립학교장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사건을 계기로 일제의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지게 되었고, 결국 기독교계는 일제에 순응하는 쪽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쪽으로 분열되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크게 '신사참배 강요금지 청원운동'과 '신사참배거부 권유운동' 2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특히 평남의 박관준 장로나 안이숙, 김선두 목사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유일신을 모신다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한 기독교계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