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풍납토성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13.08.08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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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는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바로 한성 시대, 웅진 시대, 사비 시대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관심사는 백제의 수도와 사료와의 관련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수도를 중심으로 서술하려고 합니다. 즉, 풍납토성을 시작으로 백제가 멸망했을 당시의 사비성까지를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목차
가. 백제를 선택한 이유
나. 풍납토성
ㄱ. 풍납토성의 위치와 규모
ㄴ. 풍납토성의 역사
ㄷ. 풍납토성과 하남 위례성
ㄹ. 위례성의 명칭 변화와 풍납토성
ㅁ.『삼국사기』에서의 풍납토성
다. 웅진도성
ㄱ. 웅진도성 천도의 배경
ㄴ. 공산성의 역사와 규모
ㄷ. 공산성과 웅진도성의 왕도
ㄹ. 공주시내와 웅진도성의 왕도
ㅁ. 웅진시기의 도성
라. 사비도성
ㄱ. 사비도성 천도의 배경
ㄴ. 부소산성의 역사와 구조
ㄷ. 나성의 역사와 구조
ㄹ. 사비도성과 부소산성, 나성과의 관계
마. 마치면서
바. 참고문헌 목록
본문내용
가. 백제를 선택한 이유
- 한국 고대사에서 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치는 역사 속에서 수도의 천도가 문헌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조선이 왕검성에서 평양성으로의 천도, 고구려의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다시 평양성으로의 천도, 백제의 위례성에서 사비성으로 그리고 부여로의 천도와 가야의 중심 세력의 변화에 따른 수도의 변화 등 곳곳에서 수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 나라에서 수도를 천도 하면서 국가의 변화를 꾀하였지만, 백제의 3번의 천도는 다른 나라들과는 차이점이 존재 합니다.
먼저, 백제는 한강 유역에서 발원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와는 다르게 국가의 발전에 따른 수도의 이전이 필요 없는 넓은 평야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고구려의 한반도로의 세력 확장 정책에 의해 수도를 빼앗기고 도주하여야 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는 차별됩니다. 즉, 수도가 함락당하는 엄청난 충격을 겪은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전쟁터에서 가장 많은 왕이 전사한 나라가 백제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자주 전사하였다는 것은, 그 왕이 추진해 온 모든 정책적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고 곧 왕권의 불안정화를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왕권을 재정립 하기 위해서 두 번의 천도를 단행하였다는 점은 어느 나라들과 다르지 않지만, 그 결과는 왕권의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전쟁터에서 전사하였다는 것은 한 나라라는 거대한 단체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과 같은데, 이런 크고 중대한 일을 빠르게 수습해나갔다는 사실이 백제의 저력이 느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우리 고대사에 존재하였던 나라들 중에서 백제라는 나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백제는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바로 한성 시대, 웅진 시대, 사비 시대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관심사는 백제의 수도와 사료와의 관련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수도를 중심으로 서술하려고 합니다. 즉, 풍납토성을 시작으로 백제가 멸망했을 당시의 사비성까지를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참고 자료
이형구 저,『백제의 도성』, 도서출판 주류성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편저,『사비도성과 백제의 성곽』, 서경문화사
이동주·김민태 저,『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 지식채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편저,『백제도성의 변천과 연구상의 문제점』, 서경문화사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편저,『위례산성』, 서경문화사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저,『한성백제사』권3「왕도와 방어체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백제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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