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호사카 유지 저) 요약 및 평가
- 최초 등록일
- 2013.07.01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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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시대를 이끈 정신은 선비정신이다. 그들이 올바를 때 나라는 길을 잃지 않았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벼슬살이를 하거나 재야인사로 남아 나라의 방향을 제시하려 했다. 이들은 학문을 연마하면서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였고 나라가 잘 운영되기 위한 목표를 유가사상을 기반으로 이루고자 하였다. 반면에 동시대의 일본을 이끈 정신은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원래 귀인을 경호하던 자들이었으나 세력이 커지면서 영지를 하사 받고 통치하기 시작했다. 다른 영지로의침략과 주군에 대한 하극상을 통해 타인을 넘어서고자 하였고 생존해있는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한 목표를 손자병법을 기반으로 이루고자 하였다. 임진왜란은 사무라이들의 영지에 대한 욕구 충족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일한 자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중 략>
막부 정통 가문인 미스쿠니가 『대일본사』를 집필하면서 미토학이 정립하게 된다. 이는 천황에 대한 존경심을 유교적인 충효의 개념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를 후기 미토학의 학자인 아이자와 세이시사이가 『신론』을 내면서 존왕양이론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신론』을 통해 고쿠타이의 존엄성에 대해 밝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계정세와 열강의 침략에 대한 방책을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에도 막부가 미국의 페리제독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계기로 발생한 천황과의 갈등이 일어나자 천황을 따르지 않는 막부의 책임을 묻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미토학의 중심지인 미토번에서는 이것이 천황중심의 일본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에도 막부를 굴복시키고 천황중심의 국가로 나아가는 메이지 유신을 달성한다. 다시 말해 성리학적인 명분론에 비추어보았을 때 사무라이들은 마치 선비들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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