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고대국어
- 최초 등록일
- 2013.06.19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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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자료
2. 표기법
3. 음운
4. 한자음
5. 문법
6. 어휘
7. 향가 해독의 방법
본문내용
고대의 한반도 및 이에 연결된 대륙의 일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 언어가 있었다. 7세기 후반 한반도가 신라의 독무대로 변하였고, 이에 따라 백제와 고구려 고지의 언어는 점차 신라화 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리하여 한반도의 언어적 통일이 이루어져 갔던 것이다.
신라는 삼국에서 가장 늦게 발전하였기 때문에 한자도 가장 늦게 알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적어도 국초에는 이미 한자가 알려져 있었을 것이며,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한자로 자국어를 표기하는 방법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신라에서 큰 발전을 보였고 이는 이두, 향찰 등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신라 문학은 향가로서 대표되는데 향가 문학은 통일신라 시기(7세기에서 10세기)에 융성했다. 신라어에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의 하나는 중국어의 영향이다. 이 영향은 어휘에 가장 현저하였다. 8세기에는 지명을 중국식으로(한자 2자로) 개명한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이런 영향은 그 뒤 인명에까지 일반화되었다.
< 중 략 >
제3절 음운
자음체계에 있어서 폐쇄음에는 평음(ㅂㄷㅈㄱ)과 유기음(ㅍㄷㅊㅋ)의 양계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타이조어의 유성음과 무성음의 양계열이 국어에서는 합류되었다고 볼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합류가 있은 뒤에 유기음이 발달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유성음과 무성음의 양계열의 합류가 일어난 것은 어두 위치에서는 무성음만이 나타나고 모음간 위치에서는 유성음만이 나타나게 된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유기음은 처음 어중의 음결합에서 생겨나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유들로 어두에도 나타나게 되었으리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어두 유기음을 가진 단어는 중세국어에 있어서도 그 수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으며 중세국어의 후기와 근대국어의 시기에 다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국어에 있어서도 그 수가 어두 평음을 가진 단어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적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한편 고대의 한자 차용 표기의 전반적인 검토도 유기음의 존재를 암시한다. 가령 荒,萊를 의미하는 단어가 居柒(중세국어 ‘거츨’)이라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柒은 분명히 차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居柒은 ‘거츨’로 재구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