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중국의 서구문화 수용양상과 유교지식인의 대응양상
- 최초 등록일
- 2013.06.17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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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을 통하여 서양 문화와 접하게 된 이후 기존의 유교 중심, 전통 중심의 사상을 버리고 서양의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지향하며 많은 갈등과 혁명적인 시도 이후 현대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화사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은 서구로부터 많은 충격을 받게 된다. 그 당시에는 주로 ‘전통과 현대’, ‘중국과 서양’이라는 차이와 대립에 관한 극복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 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중국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서구의 문화와 사상을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또한 그에 따른 지식인들의 대응방식이 어떠하였는지 살펴보고 그에 따른 중국의 향후 전망과 유교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이 서양 사상을 수용하고 근·현대화하는 과정은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아편전쟁~청일전쟁. 둘째, 변법운동. 셋째, 신해혁명. 넷째, 5·4 신문화운동과 북벌전쟁. 다섯째, 국내 혁명전쟁. 여섯째, 문화대혁명의 시기가 그것이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시기들의 순서대로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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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는 국내 혁명전쟁(1927~1936)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통일 상태가 깨지면서 정치적으로 포위 토벌전이 전개되어 서양 철학의 수용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국민당은 봉건 복고사상을 선전하는 것의 한 가지로 ‘역행 철학’을 주장하면서 중국 본위 문화 건설을 내세웠다. 이에 대응하여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5·4 시기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신계몽운동이 진행 되어야 한다는 중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러한 계몽 운동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서양 철학들이 소개되었다. 한편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현대 신 유학 또한 형성되었다.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동·서 문화 논쟁’과 ‘과학과 현학 논쟁’이 있다. 5·4시기의 과학주의적 사조는 중국의 전통 문화와 봉건문화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한편 동시대의 세계 1차 대전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가 드러나면서 5·4 지식인들의 과학, 민주 숭배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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