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법당방 고분
- 최초 등록일
- 2013.06.04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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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 조사경위 및 내용
Ⅲ. 나오는 말
본문내용
개성 법당방 고분은 우리나라에 얼마 있지 않는 고려시대 벽화고분으로써, 해방이후 우리손으로 발굴한 유적이다. 그러나 최초발굴이었던 호우총에 비하여 얼마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현재는 북한지역에 속해 있어 우리에게는 가볼 수도 없고 이름도 낯선 유적이다. 또한 1947년에 우리손으로 발굴되었지만 전해지는 자료가 적다. 1954년에 발간된 이홍직의 『韓國古文化論攷』에 첫 단락에 법당방고분 발굴기가 있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싶은 자료이다. 그러나, 이 책 또한 너무 오래되어 수록되어 있는 벽화고분의 사진이 거의 보이지 않고, 조사 당시 실측과 모사를 하였다고 하나 이 역시 찾기 어렵다.
<중 략>
전술한 대로 한일한방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인이 도굴을 했다는 노인의 진술이 있어 내부 유물에 대한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출토유물은 첫째로 오릉백동경(五菱白銅鏡)이 완형이 2점, 반파된 것이 1점 있었다. 3점은 모두 같은 형태의 얇은 동경으로 원형에 가까우나 오릉(五菱)의 곡선을 나타내고 있으며 주변(周邊) 가까이에 1쌍의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경면은 현재도 비칠정도였다. 완형중의 하나의 배면은 간단한 손잡이를 중심으로 지름 7㎝의 선이 돌려있으며, 이것은 반파된 거울도 뚜렷하게 있었으며, 나머지 완형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작은 손잡이에 성냥개비만한 소목편을 종이로 말아서 꽂은 것이 있었다.
<중 략>
본 고분은 현재봉분을 대략 측정하여 보면 반경 5미터의 원형을 그릴 수 있다. 미터를 당시의 단위로 계산하여 보면 대략 23.75평(步)로 되며, 현재 높이가 1.40미터 이니 원래는 2미터 가량되었다고 보면 6척 이상으로 추정된다. 상기 금령에 비추어 보아서 이 고분 묘주의 신분을 추정할 수 있다.
고분은 이미 도굴되어 호화로운 부장품은 거의 없어져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다만 석실벽화를 그린것에 비하여 그 구조는 1급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중급으로서는 부유한 인물의 분묘라고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그림으로서는 모든 자료를 다 합쳐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고분 벽화는 중요하다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