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 엘리자베스 구민법에 의한 구빈에서의 빈민들의 생은 욕구에 기반하여 보지적으로 만족한 생활을 했는지를 토론해봅시다
- 최초 등록일
- 2013.06.04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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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엘리자베스 구민법에 의한 구빈에서의 빈민들의 생은 욕구에 기반하여 보지적으로 만족한 생활을 했는지를 토론해봅시다
2. 결론
본문내용
사회 복지의 역사는 빈곤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빈곤의 사전적 정의는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빈곤은 역사적으로 본다면 청동기 시대에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빈곤이 인류의 가장 오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영국 튜더왕조, 헨리8세 때가 되어서이다. 영국이 세계적으로 사회복지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제도화되고 확립된 것이 아니다. 빈곤법이 나오기 전까지의 당시는 중세 봉건제 사회였는데 귀족층과 그 다음 층인 젠트리-대지주들, 젠트리 밑으로는 자영농민인 요먼, 상인, 법률가등의 중간계층이 있었고 피지배층으로 농민과 장인이 있었다. 당시 1348년에 대규모 재앙인 흑사병이 유럽 전국을 휩쓸었다. 흑사병 발생이후 유럽 전체 인구 중 30-45%가 사망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역사상 가장 참담했던 이 시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보다 나은 처우를 받게 해주었다. 흑사병이 발생하기 전에 영국의 노동력은 과잉공급의 상태였으나 흑사병이 한번 휩쓸고 가자 영국은 오히려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고 결국, “돈 많이 안줘? 그럼 일 안 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근로 빈민들의 임금이 상승하게 되었고 지주들은 임금상승을 통제하고, 임금상승을 야기하는 노동력 이동을 금지하기 위해 빈민법 제정을 촉구하게 된다. 이를 통해 1351년에 규정된 노동자 규제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끊임없이 그 내용이 진화하며 부랑과 걸식을 금지하고, 노동력의 이동을 제한하여 임금을 고정시켰다. 이러한 법은 16세기까지 이어졌는데, 법을 위반하는 걸인과 부랑자는 구금과 폭행으로 처벌하였다. 왕권이 바뀔 때마다 여러 번에 걸쳐 제정된 빈민법들은 하나같이 부랑자를 강제로 노동시키거나 억압하는 내용이었고, 이 시기의 빈민법은 튜더 빈민법으로 통칭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