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이행기의 대중문화
- 최초 등록일
- 2013.05.09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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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6월 항쟁과 IMF
2. 6월항쟁의 문화사적 의의
3. 6월 항쟁이후 대중문화 상황의 변화
4. IMF 경제위기와 대중문화
본문내용
민주주의 이행기의 대중문화_6월 항쟁(1987년)에서 IMF(1997년)까지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민 항쟁은 4·19, 부마항쟁, 5·18 광주 항쟁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 우뚝 솟아 있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광주민중항쟁을 빼고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 할 수 없듯이 6월 항쟁을 거론하지 않고는 이후 현재까지 이르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물론 6월 항쟁 그 자체는 당시 시민들의 민주화와 변혁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문민정부로 불린 김영삼 정권은 1997년 IMF경제위기를 맞았고 결국 그해 선거를 통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50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국민의 정부라 불리던 김대중 정부는 IMF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사회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부터 1997년 IMF위기까지 이 시기는 한국 사회가 나름대로 민주주의적 변화과정을 밟으며 특히 문화적으로 격변을 경험했던 시기이다. 문화시장의 팽창, 검열의 완화, 신세대문화의 등장 등이 이루어지면서 한국 사회에서 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시기가 이때이다.
○ 6월 항쟁과 IMF
6월항쟁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시위. 전두환 정권은 4·13호헌조치(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거부하고,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킨 조치.)를 발표하고,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등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하였다. 6월 10일 국민운동본부는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를 개최하여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이나 또는 국민이 선출한 다른 대표자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 호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